• [직장인] 밝히는 여성 세상을 밝힌다[여성만담 만화 ‘마님난봉가’ 그린 장차현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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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5.01.04 10:00:58
  • 조회: 1330
조선시대, 한 고을에 총명하고 아리따운 처녀가 살았다. 네명의 사내가 그녀를 아내로 삼으려 찾아왔다. 첫째 사내는 글 잘 짓고, 둘째 사내는 무예가 뛰어났으며, 셋째 사내는 돈이 많았다. 그러나 이 처녀가 선택한 것은 무식하고 미련해 보이는 네번째 사내. 평강공주라서가 아니다. 망태기 가득한 돌을 들어올릴 수 있는 이 사내의 힘(?)이라면 다른 건 다 필요없다는 ‘엉큼한 속셈’이었다.

“열녀들의 전성기인 조선시대에 이런 민담이 진짜 있었을까 싶죠? 민담을 기록한 조선시대 사람도, 현대에서 그걸 번역해 소개한 사람도 대부분 남성이다보니 그동안 정숙한 이미지로 박제화된 여성들의 민담만 소개돼 왔던 겁니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도 말이에요.” 장차현실씨(40·여)는 그래서 엉큼하고 ‘밝히는’ 여성들이 등장하는 민담들만 찾아 헤맸다. 그 결과물이 얼마전 출판된 만화책 ‘마님 난봉가’. 난봉꾼 사대부는 봤어도 난봉꾼 마님이라니.

조신해야할 첫날밤에 자신도 모르게 새신랑보다 더 흥분해버려 소박맞은 발칙한 처녀, 남편과의 뜨거운 밤을 위해서라면 하루에 밥을 아홉번이라도 지어올리겠다는 속보이는 여인네들의 얘기다.

성을 다룬 만화라고 해서 터질 듯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의 ‘요부’ 같은 그림체를 떠올렸다면 오산. “제 만화에 나오는 여자들은 예쁘지 않아요. 오히려 억척스럽게 생겼죠.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순덕이 엄마’의 발랄한 성얘기일 뿐이에요.”

색을 밝히는 단정치 못한 여자가 결국 돌팔매 맞으며 끝나는 고리타분한 민담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즐기며 살아간 쾌활한 여성들의 행복한 이야기.



책으로 엮기 전, 연재했던 모 신문사에는 ‘어떻게 이런 야한 만화를 실을 수 있느냐’는 항의전화가 빗발치기도 했다. “항의전화가 많을 땐 조금 덜 야하게 그렸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또 섹시하게 그리고. 그렇게 하길 반복했죠, 뭐.” 장씨는 오히려 그게 더 재밌었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처음부터 성에 대해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결혼전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불감증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해 무지했다. 한때 이혼의 아픔을 겪으면서 ‘이혼녀인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란 두려움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가 눈을 뜨게 된 건 1997년 ‘마님 난봉가’의 1탄격인 ‘색녀열전’을 그리게 되면서부터. 자료를 얻기 위해 주변의 모든 여자들을 집으로 불러다 매일 같이 성을 주제로 방담을 펼쳤다. “단칸방에 살면서 애들 깰까봐 랜턴 켜고 몰래 한다는 얘기들을 거리낌없이 수다 떨듯 풀어놓는 모습들을 보면서, 성은 은밀하며 저속한 게 아니라 건강하면서도 건전한 일상적 행위란 걸 깨닫게 된 거죠.”

성에 대한 당당함과 여성으로서의 주체성을 되찾고 난후 자신이 더 예뻐지고 더 행복해졌다고 자부하는 장씨. 연하의 남자친구와 만나 새로운 사랑도 찾았다. 딸, 남자친구와 셋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는 그는 “남자친구와도 동거, 호주제 때문에 내가 낳은 딸과도 법적으론 동거. 그러고보니 우리 가족은 셋다 동거관계네요”라며 여유롭게 웃는다.

다운증후군인 딸 은혜(14)와도 성에 대해 자주 얘기를 나눈다. 은혜가 ‘장애여성은 성적으로 무능하며 아름답지 못하다’란 편견의 틀 안에 갇혀 성을 포기하지 않도록 말이다. 원하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라는 얘기, 자위, 키스하는 법 등등 은혜가 호기심을 보이는 모든 것에 자세히 대답해준다. 성에 대해 당당해지지 않으면 결국 잘못된 정보로 스스로를 왜곡하게 되기 때문이다.



장씨는 여성이든, 장애여성이든, 노인이든, 동성애자든, 모든 사람이 자신의 만화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자유롭고 평등하게 성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에 대한 무지가 미덕이었던 시대는 이미 지났죠. 누구든 돈 안들이고 평생 즐길 수 있는 게 바로 ‘몸’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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