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파리의 버선 전설을 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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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2.28 10:11:02
  • 조회: 509
[최승희 이어 65년만에 佛 샹젤리제극장 입성 … 무용가 강미선]



‘샹젤리제극장에 서다’.

65년 만의 파리 입성. 1939년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가 춤췄던 파리 샹젤리제극장에 그 사람, 강미선 교수(43·한국체육대 무용학과)가 섰다. 최승희의 파리공연후 지휘자 정명훈, 피아니스트 백건우씨 등 한국 예술가들이 이 극장에 서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무용공연은 65년 동안 전무했다. 최승희-강미선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기(氣). 여성의 보이지 않는 힘이 세다.

1913년 개관된 샹젤리제극장은 파리에 있는 수십 개의 공연장 가운데 가장 유서깊은 곳. 2,000여석의 객석은 르네상스시대의 찬란한 문화를 재현하듯 화려한 장식의 자줏빛 의자로 빛난다. 파리 공연예술의 자존심으로 통하는 이곳에서 한국여성 강미선씨가 진가를 떨쳤다.



#샹젤리제극장 입성

한국무용가 강미선씨는 지난 12일 샹젤리제극장에서 한국 전통춤 ‘교화무(敎華舞)’로 파리를 녹였다.

일제강점기 최승희(1911~1967?)는 ‘보살춤’으로 파리 사람들을 자신의 팬으로 만들었고, 2004년 성탄절을 앞두고 강미선씨는 조선시대 교방무(敎坊舞)인 ‘교화무’로 파리를 촉촉하게 적셨다.

이날 공연은 한국전통문화연구원 주최로 마련된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한 부분으로 선보였다.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한국전통복식 패션쇼에 이어 공연된 ‘교화무’는 샹젤리제극장을 가득 메운 2,000여명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샹젤리제 극장에 섰다는 사실보다 프랑스인들에게 우리 춤의 멋과 흥취를 전했다는 작업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프랑스인들의 문화적인 자존심은 아무도 못 말린다고 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도 우리 문화의 은근한 격조와 여백의 아름다움을 부정할 순 없을 겁니다.”

강씨의 춤이 끝난 후 관객들은 잠시 넋을 놓고 있다 미친 듯 박수했다. 약간 휘어진 허리선은 한국춤에서만 가능한 곡선. 버들가지처럼 부드럽게 휘어진 허리를 한바퀴 돌리며 위로 뻗었던 왼손은 어느새 허리 뒤로 돌아가 치마끝자락을 잡아 뿌린다. 교화무만이 그릴 수 있는 공간의 미학이다. 붉은 치마에 가려 있던 하얀 버선코가 수줍게 드러나고 앞뒤로 무대를 슬쩍슬쩍 찍는 버선차림의 발사위는 동양적인 교태의 백미를 보여준다. 객석에선 요염하고 부드러운 춤사위가 이어지자 한숨이 새어나왔다.

역사 91년의 샹젤리제극장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초연되다 관중의 야유로 중단되기도 했던 유명한 공간. 러시아발레단장 겸 문화기획자 디아길레프가 유럽에 발레를 진출시킬 때 전초기지 노릇을 했던 극장이기도 하다. 국내에선 몇해 전 국내 유명발레단에서 대관신청을 했지만 콧대 높은 극장측이 대관을 거절해 아직도 쓰디쓴 추억의 장소로 남아 있다.



#강미선 춤 40년-교화무

4살때부터 40년 동안 춤췄다. 수많은 국내외 공연을 마련하면서 욕심은 커지게 마련이다. 이미 외국무대에 알려진 사물놀이보다는 진정 한국문화의 또 다른 면을 알려줄 만한 프로그램을 모색해왔다. 교화무는 바로 그런 맥락에서 준비된 춤프로그램이다.

강교수가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다듬은 ‘교화무’는 차분하면서 끈끈하고, 섬세하면서 애절한 춤태가 하이라이트다. 권번에서 기생들이 추던 춤으로 정중동(靜中動)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특징. 강미선씨는 자문을 통해 의상, 머리형태, 머리장신구 등을 옛 모습대로 파리무대에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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