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울지 않아요 하모니카가 대신 울어주니까요” [하모니카 마스터 전제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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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2.27 10:13:05
  • 조회: 705
그는 재즈 가수 말로씨와 술을 마시며 ‘쌩쇼’를 벌인다. 말로씨는 노래부르고 그는 숟가락으로 장구치듯 하다가 어느새 하모니카를 분다. 조성모, 박상민, 조규찬, 이적, 김정민 등 유명 가수들의 음반 안에 흐르는 독특한 하모니카 소리의 주인공. ‘하모니카 마스터’ 전제덕씨(30)다.



#안보이는 김덕수

가수들은 새 음반을 만들거나 중요한 공연이 있을 때 그의 하모니카 연주를 탐낸다. 팝과 라틴, 발라드, 재즈를 가로지르는 감수성과 화려한 테크닉이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말 하모니카 연주만으로 구성된 국내 첫 재즈 음반이 나왔다. 그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반대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성화로 2년 만에 탄생됐다.

‘안 보이는 김덕수’가 하모니카를 들고 사람들 앞으로 나온 것이다. 하모니카를 연주하기 전 김덕수 사물놀이패에서 장구를 쳤다. ‘안 보이는 김덕수’는 그때 붙은 별명이자 예찬이다. 그는 생후 며칠 만에 원인모를 열병을 앓아 엄마와 눈 맞춤하기 전 시력을 잃었다.

8년전 사물놀이로 평생을 살려던 그에게 하모니카가 왔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세계적 재즈 연주자 ‘투츠 클레망’의 연주를 들은 게 계기였다. 세상의 소리 같지 않았다. 하모니카에 영혼이 담긴 듯 대가의 소리는 자유로웠다. 이때부터 오로지 음반을 통해 귀로 들리는 소리를 따라 하모니카를 익혔다. 악보를 볼 수도 없고 가르쳐줄 만한 사람도 없었다.



#하모니카의 울음

음반이 나온 후 어머니는 신이 났다. 아들의 방송출연이나 재즈공연 무대가 잦아졌다. 대기실에서 하루 몇 시간을 기다려도 콧노래가 나왔다. 아들의 손을 잡고 길 안내를 하며 말동무도 하고 잔소리도 늘어놓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두달 전부터 아들과 동행할 수 없게 됐다. 한밤중 죽음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올들어 몸이 안좋아 종합검진 날짜를 잡아둔 터였다. 간암이었다.

“남들은 울어도 저는 울면 안돼요. 제가 울면 엄마가 더 힘들잖아요. 암이 동그랗게 예쁘게 잘 자랐다고 농담했어요.”

전제덕은 기억나는 울음이 두번 있다. 7살 때 부모와 떨어져 특수학교에 갔을 때다. 낯설고 두려웠다. 시설은 최악이었다. 선배들은 버릇을 가르친다며 크고 작은 일에 기합과 매를 들었다. 집이 너무 그리웠고 원망도 컸다. 악을 쓰며 울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 그곳에서 생활했다. 사물놀이는 일종의 탈출구이자 희망이었다. 1993년 ‘세계 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에서 대상을 받았다. 김덕수 산하 사물놀이패 ‘천둥’에서 장구실력을 발휘하며 활동했다.

두번째 운 것은 특수학교 졸업 후 잠시 복지관에 근무할 때였다. 퇴근하고 어머니와 동행하는 길. 갑자기 골목에서 나오던 가스 트럭에 치였다. 앞으로 넘어졌다. 손으로 더듬더듬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꼼짝하지 않고 땅에 누워있었다.

“어디가 인도인지, 차도인지 모르고 정신없이 차 소리 나는 데로 뛰어들었어요. 지나가는 차를 잡아서 ‘사람이 죽어간다’고 소리쳤죠. 뺑소니 가스 트럭이 그 모습을 봤는지 다시 돌아왔어요.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눈물이 나더군요.”

사람들은 하모니카를 슬픈 소리로 여긴다. 그러나 그의 연주에는 슬픔과 기쁨, 즐거움, 열정이 배어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놓지 않은 삶 때문일까. 그의 소망대로 어머니는 다시 대기실에서, 무대 아래 제일 앞자리에서 아들의 연주를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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