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자선과 기부… 미국의 보이지 않는 힘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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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1.25 10:21:36
  • 조회: 662
존경받는 부자들 / 이미숙 / 김영사



“1950년대는 미합중국에 진정한 하이라이트였다. 그 시절에는 권력의 황홀경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70년대에 권력은 여전히 존재하나 그 마력은 깨졌다.”

70년대 미국을 여행한 프랑스 철학자 보들리야르는 여행기 ‘아메리카’에서 미국을 ‘성취된 유토피아’로 규정했다. 그는 이 책에서 “꿈이 성취된 미국에 남은 것은 내리막길뿐”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오늘날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최강국으로 지위를 누리고 있다. 미국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저자의 미국 탐구는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고있다. 현직 일간지 워싱턴 특파원으로 미국 사회의 내면을 속속 들여다 본 저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미국의 수많은 자선재단본부와 NGO(비정부기구). 그는 세계 최고의 군사력이나 경제력보다 이곳에서 미국의 진정한 힘을 발견한다.

자선과 기부의 모습은 미국 사회 곳곳에서 확인된다. 뉴욕의 극장 무대에 오르는 발레나 오페라 공연의 비용은 대부분 개인 기부금에서 충당된다. 기부금이 전체 공연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6% 정도. 정부 지원금은 13%, 관람료는 12% 수준이다.



미국인들이 가장 명예롭게 여기는 직업은 ‘레인메이커’. 사회에 단비를 내리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이 말은 미국에서 자선사업가를 지칭하기도 한다. 실제 미국의 백만장자 2세 등 상류층 인사들은 대부분 자선활동에서 명예를 찾는다.

자선과 기부를 이끌어가는 계층은 기업가들이다. 미국 최초의 재단은 1907년 만들어진 러셀세이지 재단. 이후 1911년 카네기 재단이, 1913년에 록펠러 재단이 설립되면서 미국의 자선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앤드루 카네기는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며 생전에 자선사업의 원칙을 세우고 카네기 재단을 설립, 평생 자선사업에 5억달러를 투입했다. 그가 지어 사회에 헌납한 도서관만 2,500개에 달한다.

록펠러는 한때 미국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선사업을 시작한 이후 록펠러 가문은 ‘자선의 명가’로 대대로 칭송받고 있다.

오늘날에도 기업인들의 자선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주식거래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며 ‘국제적인 환투기꾼’이라며 비난받기도 하는 조지 소로스도 자선에 관한한 국제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다. 스승 칼 포퍼의 ‘열린사회’ 철학을 전파하는 전도사역을 자처하고 있는 소로스는 ‘열린사회기금’과 소로스 재단을 설립하며 미국은 물론 동구권 지원사업에 나서고 있다.

CNN 창립자 테드 터너는 1997년 미국이 납부하지 못한 유엔분담금 10억달러를 기부해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갑부라는 명성에 걸맞게 2백40억달러라는 천문학적 액수를 재단기금으로 내놓아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사회적 책임)를 실천했다.



이 책에는 이밖에 ‘시애틀의 메디치’ 폴 알렌, ‘유방암 퇴치의 여전사’ 에블리 로더(에스티로더 부회장) 등 기업인과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폴 뉴먼, 테니스 선수 앤드리 애거시 등 대중스타들의 자선활동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근 100년의 역사를 지닌 미국의 자선재단 활동은 2000년 현재 5만6천5백여개로 늘었고 총재산은 4천8백억달러에 이른다. 그렇지만 미국의 자선문화를 이끄는 것은 부자가 아닌 일반 국민이다. 실제 미국 부자 가운데 자선·기부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2% 안팎이지만, 보통사람들은 70% 이상에 달한다. 또 보통 사람들의 기부 총액이 부유층 인사들의 기부액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사회운동가 마이클 오닐이 자선단체를 비즈니스, 정부와 함께 ‘미국을 움직이는 3개의 힘’으로 꼽은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같은 미국의 기부문화는 한국과 크게 비교된다. 우리나라의 기부와 자선은 장학사업이나 불우이웃돕기에 집중되고 있다. 또 말년에 모든 것을 털어주고 떠나는 ‘청산형 단순기부’가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국내의 기부문화는 삶의 질을 높이는 인류애적 수준의 자선(philanthropy)이 아니라 극빈층을 돕는 구제(charity)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한다. 미국에 대한 오호를 떠나, 사회 각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미국의 성숙된 기부문화는 우리의 훌륭한 교사임에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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