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스리랑카 노동자의 의지처 [와치사라 스님의 외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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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1.25 10:18:50
  • 조회: 507
지난해 11월. 정부의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이 불러온 첫 자살.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스리랑카인 다라카의 죽음. 그의 장례는 한 기독교 단체의 도움으로 겨우 치러졌다. 그러나 맨 앞에서 관을 든 사람은 붉은 가사를 입은 이름모를 한 스리랑카 스님이었다. 이 스님은 그후 도움을 원하는 스리랑카 노동자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방방곡곡 어디라도 달려가는 ‘거리의 스님’이 되었다.

와치사라 함두루 스님이 처음 한국에 온 건 지난해 3월. 관광여행일 뿐이었다. 그는 이때 이주노동자의 실상을 전해듣고, 정확히 6개월 후 아예 짐을 싸들고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러나 오자마자 그를 맞이한 건 다라카의 자살소식. “왜 한국에 좀더 일찍 오지 않았을까, 왜 다라카가 죽기 전에 그를 만나 도움을 주지 못했을까.” 그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그동안 그가 장례를 치러준 스리랑카 노동자만도 어느새 10여명에 달한다. 두달 전에도 불법체류자 신세를 비관해 자신이 일하던 공장의 압축기계에 몸을 내던져 처참하게 짓눌린 아말의 시신을 수습, 장례를 치러줬다. 아무도 찾지 않는 빈소를 몇날며칠 홀로 지키며 상주노릇에 가족·친지·친구 역할까지 도맡아 했다. 아말의 시신을 고향에 보내주기 위해 필요한 비행기삯 5백만원을 마련하는 것도 그의 몫. 거기에 남겨진 아말의 가족과 자식들의 생계비까지 모금하러 다닌다. 그리고 또다른 죽음을 막고자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그는 이들의 정신적인 의지처가 되어주기 위해 외국인노동자 밀집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주말마다 법회를 연다. 법회를 열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어도 포기하지 않는다. 공장, 야외공터, 때론 여관방을 빌려 법회를 열기도 한다. 그때마다 30~40명의 노동자들이 빼곡히 둘러앉는다. 법회가 끝나면 밤새도록 고민을 상담해준다.



전국 5,000명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혼자 돌보다보니 그의 휴대폰은 날마다 쉴새없이 울린다. 임금을 떼먹힌 사람, 산업재해로 팔다리를 잃은 사람, 고향이 그리워 우는 사람…. 와치사라 스님은 그들을 대신해 ‘사장님’에게 서투른 한국어로 밀린 임금을 달라고 항의하고, 다친 노동자를 위해 병원 치료비를 마련하러 다닌다.

와치사라 스님은 지난 10월 ‘재한 스리랑카 불자문화 협회’란 단체를 발족했다.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는 울타리인 셈이다. 그러나 노동자들끼리의 상부상조만으로는 각종 산재 치료비와 장례비를 대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와치사라 스님 역시 현재 머물고 있는 파주 보광사가 활동을 지원해주고는 있지만 돌봐줘야 할 식구가 워낙 많아 지하철·버스·기차값 충당조차 버거운 실정이다.

“다들 ‘코리안드림’을 품고 한국에 왔지만 막상 돈벌어 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들은 큰돈 벌 때까지 한국에 남겠다고 고집하는 게 아니에요. 다들 고향에 얼른 돌아가고 싶지만 여기서 진 빚이라도 해결해야 갈 수 있잖아요.”

자기 자신도 심한 감기에 걸려 연방 콜록거리고 있던 스님. 그러나 꿈의 나라, 실상은 냉혹하기 그지없는 이 나라에서 스리랑카 노동자를 지켜내기 위해 스님은 오늘도 쉬지 않고 홀로 고군분투 하고 있다.

후원계좌 995701-01-115477 국민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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