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우아할 틈이 없어요’[3세대 여성 호텔리어 4人의 연말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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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1.24 11:28:40
  • 조회: 403
“선아씨 아니었으면 사진 정말 칙칙할 뻔했어요. 하긴 이게 우리 교복이니 어쩌겠어요… 하하하.”

카메라 앞에 선 4명의 여성들. 한 사람만 빼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감색 치마정장 차림이다.

“옷장을 열어보면 검은색, 감색, 흰색 정장뿐이지요. 단정하고 점잖아보여야 하거든요.” 복장뿐이 아니다. 한결같이 공손하면서도 당찬 이미지다.

이들은 시내 유명호텔 4곳을 홍보하는 ‘호텔의 입’들. 언제부턴가 ‘호텔의 입’들이 젊어졌다. 1년에 두번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서울시내 특1급호텔 15곳의 홍보직원 중 10여명이 19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에 다닌 20대, 소위 ‘297’이다. 리츠칼튼 한경진(24·2003년 입사), 신라 류혜민(27·2000년 입사), 아미가 엄소민(27·2003년 입사), 프라자 원선아(27·2000년 입사)씨는 호텔 홍보의 ‘제3세대’로 꼽힌다.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호텔들이 새로 생기며 홍보마인드가 싹튼 시기가 1세대, 90년대 중반 ‘호텔리어’라는 드라마에서 보듯 한창 일했던 지금의 실장들이 2세대라면 2000년대에 입사한 이들은 3세대라는 것.

예나 지금이나 홍보실 직원들 사이에선 감색 치마정장이 ‘교복’임에는 변함없지만 호텔, 호텔리어들은 달라지고 있다. ‘여성 호텔리어 3세대’들의 눈으로 본 호텔의 변화상을 엿본다.



#호텔, 일상으로 들어오다

‘천국의 계단’ ‘아름다운 날들’ ‘천년지애’ ‘완전한 사랑’ ‘파리의 연인’….

피트니스센터, 약혼식, 식사장면 등 호텔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유난히 많았던 드라마들이다.

“텔레비전 속 노출이 많아졌다는 건 한 단면입니다. 저희들이 갓 입사한 2000년 이후부터 호텔이 대중화하기 시작했다는 걸 피부로 느껴요. 예전엔 신문이나 방송에서 ‘위화감을 조성하는’ 호텔 소식은 들어갈 자리가 없었는데 이젠 보도가 많아진 것은 물론이고, 싸고 실속있게 이용하려는 대중의 관심과 문의가 높아졌지요.”

“우리 호텔에선 추석명절이나 구정때 부인들에게 마사지와 휴식을 선사하는 ‘아내사랑 패키지’가 좋은 호응을 얻고 있어요.”(류), “저희도 부부가 객실 안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받으며 오붓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상품이 인기예요.”(한), “그뿐인가요. 고객들의 주문으로 시작된 차례상 배달 상품이 입소문으로 퍼지며 남편들이 오히려 반갑게 주문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지요.”(엄), “저희는 주말에만 싸게 파는 상품들을 많이 개발해 호응을 얻고 있어요.”(원)

주로 비즈니스 고객들을 상대하던 특급호텔들도 주5일 근무제 시행에 맞춰 가족들에게 눈을 돌려 주말 가족패키지 개발과 놀이방 설치 등에 신경쓰고 있다.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과 연계하는 문화마케팅도 활발하다.

“고객들의 관심이 다양해지며 호텔도 점점 세분화되고 있어요. 피트니스도 프로그램이 다양해지고 바(Bar)도 뮤직바, 외국인 전용바 등으로 나뉘죠. 파티를 즐기는 고객들이 많아지면서 파티컨셉트에 맞는 장소도 생기고,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최고급의 스위트룸에서 살롱쇼를 열며 룸을 공개하기도 합니다. 점차 생활의 일부로 호텔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호텔들이 ‘웰빙’이나 ‘아침형 인간’ ‘메트로섹슈얼’ 등 유행 트렌드에 너무 민감하게 움직이고 거의 1년 내내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유행의 중심부에 서 있는 이들의 따끔한 지적이다.



#제3세대 호텔리어,

할 일은 많아졌고 오를 곳도 높아졌다

“예전엔 보도자료를 작성해 기자들에게 전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대요. 지금 그런 일은 극히 일부죠. 보도자료는 물론 홍보와 관련된 각종 카피도 만들어야 하고 광고기획이나 호텔 내의 각종 이벤트, 경영자들의 이미지 관리까지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뿐인가요. 여러 부서와 관련이 있는 만큼 중요한 미팅엔 모두 참석해 조언하지요. 또 각종 홍보사진을 직접 찍어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일상이고요. 거의 ‘슈퍼맨’이라니까요.”

홍보할 수 있는 매체나 도구들이 다양화하면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의 하루는 다른 직원들보다 일찍 출근해 모든 일간지와 스포츠, 영자지 등 25개 정도의 신문을 모두 훑어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호텔관련 기사나 트렌드 기사들을 스크랩해 임원들에게 돌리고, 미팅시간을 정하고 e메일을 체크하다 보면 오전이 후딱. 출입기자들과는 주2회 정도 식사를 하고 나머지는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하며 바쁜 오후를 준비해야 한다. 오후엔 주로 각종 촬영을 진행하고 사내를 돌아다니며 홍보아이템을 찾고 그에 따른 섹시한(?) 보도자료를 작성한다. 호텔에 따라 저녁엔 다음날 아침신문을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일과 끝.

“그래도 예전엔 기자들과 저녁식사 자리가 많았다는데, 지금은 기자들도 부담스러운 저녁 대신 점심 약속을 선호해 그나마 저희 일이 줄었죠. 선배들도 거의 여성들인데 결혼 안 한 분들이 많아요. 홍보업무가 여성들에게 유리한 점도 있지만 선배들이 열심히 일하며 이 분야를 개척해주신 덕분에 저희가 ‘우먼파워’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홍보실 출신 임원들이 출세하는 것은 기업들의 전반적인 추세. 호텔에서도 예전엔 재무나 관리, 기획 쪽에서 고속승진을 했다면 이젠 호텔들의 서비스나 시설이 비슷해진 만큼 외부에 어떻게 강력하게 알리느냐가 중요해졌다.

“꿈이오? 총지배인이죠.” “홍보 전문가죠.” 4명의 눈빛이 동시에 빛났다.



#너희가 호텔 홍보를 알아?

얼마전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호텔 홍보실 근무’가 선망하는 직업 2위로 뽑혔다. 찬란한 샹들리에와 우아한 음악, 고급 음식점들이 즐비한 곳에서 얼마나 ‘폼나게’ 근무하고 있을까.

그러나 15개 특1급호텔 홍보 담당자들이 모이는 회식은 정기적으로 복날 개고기 모임과 삼겹살과 소주를 곁들인 송년회다.

“왜 드라마들을 보면 사장딸들이 홍보실장으로 자주 나오잖아요. 어휴, 환상을 버리세요. 얼마나 막노동판인데요.”

이들은 무조건 부러워하기만 하는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단다. 밤새 오들오들 떨면서 호텔 외관 장식에 동원돼 나중엔 크리스마스 트리의 ‘크’나 ‘트’자만 나와도 진저리치는 심정을 아느냐고. 또 일을 성사시키느라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없는 애교도 떨어야 하고, 촬영현장에 필요한 소품이 없을 경우엔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는 아픔을 아느냐고.

직업병도 만만치 않다. 신문만 보면 무의식중에 칼을 들고 스크랩을 해야 할 것 같고, 전혀 호텔과 관련없는 기사 속에서도 기업에 악의적인 기사가 나가면 얼굴도 모르는 그 회사 홍보팀 직원이 걱정된다. 음식점에 가도 메뉴판의 오타와 띄어 쓰기가 먼저 눈에 띄는 ‘직업병’을 이들은 모두 갖고 있다.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 등 즐거운 행사들이 저희에겐 가장 힘든 날이에요. 그래도 바쁜 행사 뒤의 휴식과 고객들의 웃음소리는 꿀맛이죠. 그 맛에 일하는 것 아니겠어요?”

요즘은 크리스마스 장식과 윈터패키지, 겨울 이벤트 준비, 다이어리와 캘린더 제작 등으로 눈코 뜰 새 없다. 그래도 연말의 분주함을 천직으로 여기는 여성 호텔리어들의 따뜻한 미소에 이 겨울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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