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내가 입은 것보다 더 흐뭇해요” [‘드레스 인형’만드는 윤형미·정지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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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1.22 10:04:03
  • 조회: 888
“해바라기를 수놓은 금사드레스를 입은 애는 ‘프랑수아 공주’이고요, 화려한 새틴공단 리본으로 멋을 낸 애는 ‘앙트와네트’, 실크 자카드 원단에 레이스를 단 애는 ‘빅토리아 공주’예요.” 로코코 시대의 왕실 파티에 초대받은 듯한 착각이 들지만, 실상은 ‘공주풍 드레스인형’에 대한 설명이다. 지난해 3월 ‘공주풍 드레스 인형협회’를 결성하고 ‘드레스 인형’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윤형미씨(32·사진 왼쪽)와 정지원씨(31·오른쪽)는 서른을 넘긴 나이에도 소녀처럼 상기된 얼굴로 자신들이 손수 만든 ‘인형’을 하나 하나 소개했다.

‘공주풍 드레스인형’은 여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바비인형’을 천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바비인형의 날씬하고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부드러운 천으로 표현해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인형의 얼굴보다 옷차림에 포인트를 둔 것도 ‘공주풍 드레스 인형’의 특징.

광고회사에 다니던 윤형미씨는 직장생활의 건조함을 메우기 위해 ‘퀼트’를 배우다가 바느질이 주는 ‘몰두’와 ‘느림의 미학’에 매료돼 직장생활을 접고 지금은 전업 인형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테디베어를 만들었는데, 저는 인형보다 인형 옷에 관심이 더 많이 가더라고요. ‘누드 곰’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그러다 보니 좀더 화려하고 멋진 인형 옷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지금의 드레스 인형을 만들게 됐죠.”

윤씨는 자신의 작업과정과 작품들을 ‘미스위즈’라는 인형사이트를 만들어 공개했다. 윤씨의 드레스 인형은 인형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이 사이트를 찾은 정지원씨와 뜻이 맞아 협회를 결성하고 전문 강좌까지 열게 됐다.

“자기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윤씨와 정씨는 백화점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현재 10곳에서 ‘드레스 인형’ 강좌를 열고 있다. 지방에서도 강좌 개설 요청이 있지만 현재로선 여력이 없어 미루고 있는 상태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공주’들을 현실에 불러낸다는 재미가 이 작업의 묘미인 것 같아요. 더군다나 여자들은 ‘공주’와 ‘드레스’에 대한 판타지가 있잖아요. 더 예쁘고 더 화려한 옷을 생각하고, 창작에 몰두하다 보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져요.” 윤씨와 정씨는 그동안의 작품들을 모아 지난 10월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장은 말 그대로 ‘예쁘다’라는 탄성의 물결이었어요.” 헤드헌터로 일하면서 인형작업을 하고 있는 정지원씨는 이 분야에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이다. “워낙 바느질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입시를 앞두고도 서랍 속에 바느질감을 넣어두고 몰래 했을 정도니까요.” 그녀는 자신이 만든 인형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 “연애시절, 남자 친구에게 자신이 만든 인형을 선물했더니, 그냥 필이 꽂혀 결혼까지 하게 됐다”며 “애인이 없는 사람들은 인형을 만들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며 우스개 소리를 해 폭소를 자아냈다.

정교하고 복잡해 보이는 ‘드레스 인형’의 제작 과정은 의외로 쉽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서두르지 않는 마음과 끈기, 그리고 인형에 대한 애정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현재 협회사이트(www.dressdoll.com)에서 70여종의 드레스 인형 패턴을 공유하고 있고, 이를 활용하기 때문에 초보자라도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형 마니아들에게 ‘인형’은 출산의 아픔을 겪은 아이처럼 하나 하나가 ‘생명붙이’이다. 윤씨와 정씨는 자신들이 탄생시킨 인형에겐 모두 사연과 표정이 있다고 밝혔다. 정씨는 최근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검정색 드레스를 단아하게 입은 ‘폴린 부인’을 창작해 냈다. 윤씨는 얼마전 암으로 죽은 홍콩 여배우 매염방을 생각하며 ‘붉은 드레스’를 입은 ‘로리타’를 제작했다. ‘로리타’의 옷과 표정에는 겉은 화려했지만 외로움으로 가득했던 여배우의 슬픈 이면이 드러나 있다.

갈수록 개인이 파편화되는 현실에서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위안이자 경쟁력이다. 마음이 담긴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은 계절이다. 내가 직접 만든 ‘어떤 것’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한 선물’이다. 그것이 인형이라면 더욱 사랑스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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