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리어카 한대에 고단한 삶을 싣고… ‘황가네 호떡 황호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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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1.22 09:58:39
  • 조회: 873
황호선씨(47)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상 사이에서 ‘신화’로 통한다. 1994년 노점 호떡 장사로 시작해 ‘황가네 호떡’ 브랜드를 내건 150여개의 프랜차이즈 매장을 두었다. 올초에는 (주)황가네 에프에스 회장 자리에 올랐다. 경기 고양시 일산구 덕이동에는 체인점에 공급할 재료 공장이 있다. ‘황가네 호떡’은 일본 신주쿠에도 진출했다. 올 연말에는 냉동 호떡으로 일본 진출을 본격화한다.

10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다. 황회장은 일산의 한 쇼핑센터 앞에서 길이 2m40의 무쇠 철판을 놓고 친구와 함께 호떡 장사를 시작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 냉차도 아닌 호떡을 판다고 ‘미친놈’ 소릴 들었다. 호떡은 큰 밑천 없이 당장 시작하기 좋았다. 거듭되는 사업 실패에 앞뒤 가릴 여유가 없었다.

밀가루 반죽 비법은 동업한 친구가 알고 있었다. 황씨는 굽기만 했다.

그런데 몇달 못가 반죽 비법을 모른 채 동업자와 결별했다. 반죽 비법을 터득하기 위해 아내 윤명실씨(45)와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찹쌀 섞은 반죽을 아랫목에 묻고 이불을 덮은 뒤 닭이 알을 까듯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 찹쌀은 같은 양을 넣어도 날씨에 따라 쫄깃한 맛이 달랐다. 호떡 맛이 예전 같지 않으니 장사도 신통치 않았다. 6개월 가까이 맛 개발에 몰두했다. 거듭된 시행착오 끝에 직접 빻아 넣은 찹쌀에 다양한 재료가 어울려 쫄깃하고 맛좋은 호떡이 탄생했다.



노점 호떡집이지만 당당히 ‘황가네 호떡’ 브랜드를 달았다. 이틀치 호떡 판 돈을 모아 로고가 박힌 앞치마도 만들었다. 아이와 함께 온 손님이 무심히 부른 아이 이름을 기억해뒀다가 다음번에 아이가 오면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이했다. 300원짜리를 팔았지만 친절은 고급 음식점 사장 못지 않았다. 자연 단골이 많아졌고 호떡을 먹기 위해 긴 행렬이 이어졌다.

호떡 장사는 일곱 여덟번의 실패 후 시작했다. 조명가게, 자개공장, 비닐재생공장, 공사장식당, 닭·개사육, 세라믹주방기기 제조, 물놀이용품 장사 등 안해본 일이 없다. 호떡 장사 시작 전 교통사고가 치명적이었다.

“제 과실로 교통사고가 났어요. 굶다시피 해서 모은 돈 6천만원을 모두 날리게 됐죠. 살길이 막막하고 나만 재수없는 놈 같기도 하고. 갈비뼈 부러진 몸으로 병원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했어요. 마침 창문이 잠겨 안 열리는 바람에 마음을 돌린 거죠.”

황회장은 2000년 노점을 시작한 길 앞 쇼핑센터의 1층 노른자위 매장을 차지했다. ‘황가네 호떡’ 본점이다. 지금도 아내, 서너명 종업원과 함께 호떡을 굽고 일손이 바쁘면 설거지하고 계란도 삶는다. 메뉴도 군만두, 떡볶이, 오뎅을 추가했다. 매장은 문이 아예 없는 것처럼 겨울에도 활짝 열어둔다. 의자도 없다. 손님들이 길거리에서 사먹듯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집은 7천만원 보증금에 월세 25만원인 23평짜리 아파트다. 아들이 쓰던 장롱이 유일한 가구. 식탁도 없다. 아들 둘은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는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두었다. 대학 입학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하고 군입대했던 그는 아들 형제에게 진작부터 일러둔 말이 있다.

“부모는 공부만 가르칠테니 너희들 인생은 알아서 개척하라, 가진 것은 모두 사회에 환원한다.”

기름 냄새 밴 앞치마를 풀고 틈틈이 캠퍼스로 달려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노인들에게 편안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게 또 다른 꿈이다.



매주 수요일은 황가네 식구들이 바쁘다. 이른 아침부터 300~400여개의 호떡을 구워 식지 않게 잘 포장한다. 고양시 내에 있는 보육원, 양로원, 정신지체인 시설 등 여섯군데를 돌아다니며 호떡을 전하기 위해서다.

“노점 인근에 홀트아동복지재단이 있었는데 어느날 자원봉사 학생들이 어린애들을 데리고와 호떡을 사먹였어요. 학생들이 엄마처럼 살뜰하게 호떡을 먹이는 데 꼭 천사 같더라고요. 버는 돈의 일부를 떼어내 뜻깊은 일에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백화점에서 장사하는 줄 알고 있던 초등학생 아들이 길에서 엄마·아버지를 보고 어쩔줄 몰라했던 일, 단속에 가슴 졸인 일, 추운 겨울에 아내의 뺨이 얼었던 일 등이 아련하다.

요즘 부쩍 일자리를 잃고 무작정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길거리에서 이룬 신화의 비결을 묻기 위해서다. 그러나 호떡 굽는 일을 가볍게 여기거나 시작도 하기 전에 망하면 어쩌나 겁부터 먹는 이가 대부분이다.

“처음 2년간은 퉁퉁 부은 다리로 밤잠을 설쳤죠. ‘죽을 만큼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 호떡으로도 된다, 된다.’ 하루에도 수백번씩 혼자 되뇌었어요. 성공비결도, 희망도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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