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소중한 고집 [국내 유일 여성생활사박물관 이민정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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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1.18 14:21:17
  • 조회: 386
경기 여주군 강천면 굴암리 여성생활사박물관(www.womanlife.or.kr). 서울에서 2시간여, 고속도로와 국도를 지나 비포장도로까지 털털거리며 달려오면 2층짜리 아담한 학교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폐교를 개조한 이곳 학교 운동장엔 팔랑팔랑 황톳물로 물들인 천 20여장이 춤추고 옛 교문 옆자리엔 수십개의 옹기 항아리가 오순도순 오후 햇볕을 받고 누워 있다. 가끔가다 짖는 삽살개 몇마리와 텃밭에 심어놓은 배추포기들까지 더해 박물관이라기보다 흡사 시골 할머니댁 안마당같다. 한걸음 내딛자 과거의 삶이 현재로 살아나는 곳. 그 옛날로 향하는 문을 살며시 열어본다.



#여성생활사 박물관(2001~)

머리카락을 넣어 만든 바늘꽂이, 가르마 타는 빗치개, 밥 식지 말라고 씌워뒀던 밥망, 솜으로 만든 배냇저고리, 분홍빛 고운 홍화저고리, 도포매듭, 등잔걸이, 인두판, 돈궤, 쌀뒤주, 돌다리미, 청동수저, 물레, 망태기, 촛단지….

유물수집의 역사는 젊은시절 외국에 나갔던 이민정 관장(52)의 문화적 충격에서 시작됐다. 한 외국인 친구가 다 기운 겹저고리를 들고 “할머니와 엄마가 입던건데 엄마가 주기로 했다”며 뛸 듯 기뻐하던 모습. 그때의 충격은 부끄러움이었다. ‘우리는 다 버리는데 잘 사는 나라는 저렇게 자기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외국 친구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일종의 오기로 시작된 수집. 처음엔 목기류가 예뻐 하나하나 모았고 점차 의상, 장신구, 가구, 집기류 등으로 확대돼 어느새 3,000여점으로 불어났다.

차를 가지고 다니면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워 주로 시외버스를 이용했다. 옆에 앉은 할머니들께 말 붙이고 밭에서 일도 거들면서 사라지는 우리 것들을 찾고 또 찾았다. 일찍 세상을 뜬 남편 두루마기를 주면서 “아들도 안 입는다고 해서 놔 뒀어. 나 죽으면 태워야지…. 젊은 사람이 없어질 것들을 귀하게 생각해줘 고맙다”던 할머니는 박물관을 만든 후 연락하니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마음에 드는 유물들을 만날 때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를 만큼 기뻐했던 시간들. 유물이 점차 불어나면서 어느 순간 ‘이젠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렇게 2001년 2월, 왕비 13명이 태어날 만큼 ‘터가 센’ 이곳 여주에 자리잡게 됐다. 처음부터 ‘여성’을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모으다 보니 어느 하나 여성들의 손을 타지 않은 것들이 없어 국내 유일의 여성생활사박물관이 되었다.



#자연의 선물, 천연염색

손톱에 든 쪽물이 빠지지 않아 할 수 없이 매니큐어를 칠했다는 이관장. 그의 다른 직함은 채현천연염색연구소 소장이다.

염색에 눈을 뜬 것도 유물을 수집하면서. 시골 장터에 갔다가 우연히 포목집 밖에 버려진 모시자투리들를 본 게 계기였다. 버려진 자투리들이 아까워 집에 가져가 깨끗하게 빨고 나서 40일동안 무작정 잇다 보니 1m가 넘는 길이가 됐다. 모양은 예뻤는데 색깔이 문제. 화공약품을 쓴 색깔들이 천박해 보여 언젠가 외국에서 배웠던 천연염색을 해놓고 보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유물수집과 함께 천연염색공부 독학이 시작됐다. 봄꽃부터 나무껍질이며 흙, 겨울의 한약재까지. 주변에 깔린 모든 것이 염색의 재료가 됐고 그렇게 이관장의 손에선 계속해서 새로운 색깔들이 태어났다. 재료의 종류는 많아도 나오는 색이 한정돼 있고 겉으로 보는 색과 물들여서 나오는 색도 다르기 일쑤였다. 여러개를 섞고 순서를 바꿔가며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결과 이관장은 130가지가 넘는 천연색을 얻었다.

흔히 염색이라고 하면 지독한 폐수와 오염이 생각나지만 이관장에겐 오히려 자연으로 가는 하나의 문이었다.

“밤잎은 잎대로, 떨어진 꽃들로도 물을 들이죠. 밤을 까먹고 남은 껍질로는 난로의 연료로 쓰고 그 재는 염색할 때 섬유와 염료가 잘 달라붙도록 하는 매염제로 씁니다. 거기서 남은 찌꺼기는 또 거름으로 쓰이니까 완전 순환하는 것이지요. 음식쓰레기가 되고 마는 양파껍질이나 뿌리뽑힌 나무들은 뿌리째 천연염색의 재료이니 염색만큼 자연친화적인 작업이 있을까요.”



#이관장의 소망

“정말 알아야 하는 것들을 놓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옛날의 삶을 체험하면서, 남에게 폐끼치지 않고 제몫을 다하다 조용히 사라지는 자연을 보면서, 뭔가를 깨닫고 가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관장은 흔히 박물관이라면 거창한 곳을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모여 사람답게 사는 옛날을 체험하는 소박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관장은 천연염색과 곡식빻기, 밤구워먹기, 캠프파이어 등의 체험을 할 수 있지만 더욱더 우리삶을 총체적으로 체험하는 공간으로 확대하고 싶단다. 올해와 내년부터 김치와 된장을 직접 담가 독에 이름을 써 묻어놓고 시간 날때마다 찾아갈 수 있는 김치체험, 된장체험을 준비중이고 앞으론 농사체험까지 확대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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