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인형이 사람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개구리인형 수집 전직 외교관 구충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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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1.12 11:38:54
  • 조회: 709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진짜 온갖 개구리가 다 모여 있다. 술취한 개구리, 낚시하는 개구리, 신문읽는 개구리, 기타치는 개구리…. 구충회씨(76)에겐 외로운 이국땅에서의 25년 외교관 생활 동안 든든한 벗이 되어준 1,500명의 대가족이다.

구씨는 1956년 미국에서 첫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 시절엔 가족동반으로 외국에 나간다는 건 꿈도 못 꿀 때였다. “나라에 돈이 없어서 주미 대사관 간판조차 종이로 만들어 붙일 정도였으니 가족을 데리고 갈 수가 없었지요.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임신한 아내를 두고 혼자 미국으로 떠났어요.”

그때부터였다. 그는 두고 온 가족 대신 인형들을 하나둘씩 사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엔 거북으로 시작했지만, 적적하고 외로웠던 그에겐 점잖은 거북보다 팔짝팔짝 역동적인 개구리가 필요했다. 멕시코, 홍콩, 영국, 이탈리아, 가는 나라마다 재밌는 개구리 인형을 찾아내 신이 나서 호주머니에 넣어왔다. 해변에서 구입한 개구리는 조개껍데기로 만들어졌고, 미국에서 산 개구리는 야구방망이를 쥐고 있다. “하나씩 살 때마다 가족이 느는 것 같아 어찌나 신났던지. 그 재미로 살았어요.”



이제 그에게 인형은 단순한 인형이 아니다. 지난 인생과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일부다. “요놈은 멕시코 대사 시절 칸쿤에서 산 거예요. 지금이야 칸쿤이 세계적인 휴양지지만 그때만해도 진흙바다였지. 근데 그때 G7 정상회담과 올림픽이 열리면서 말야…” 줄줄줄 신이 나 설명하는 그는 어느새 열정적인 외교관이었던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가 있다.

지난 89년 외교관에서 은퇴한 그는 지금 혼자다. 출가한 자식들은 미국에 있고 9년 전 갑작스레 부인마저 세상을 떠났다. 또다시 혼자가 된 그에게는 개구리들이 변함없이 소중한 벗이다.

구씨는 매일 인형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닦아주며 말을 건넨다. 대가족 개구리 인형세트에겐 “이놈아, 넌 이미 자식이 다섯인데 아내 개구리가 또 임신을 했구나. 허허” 핀잔도 준다. 때로 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실 때면 술취한 개구리 인형과 눈을 맞추며 “술맛 좋냐? 우리 함께 마시자꾸나”라고 건배도 해본다.

“멕시코 사람들이 그러더라구. 옛 마야문명 사람들은 빈집 지붕 위에 언제나 인형을 세워뒀대요. 인형이 있으면 사람이 없어도 빈집이 아니야. 인형도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는 거예요.”

생명이 없는 인형이란 걸 알지만 쏟아준 애정만큼 개구리들은 언제나 그에게 따스한 온기로 보답한다. 개구리 가족에게 둘러싸인 그는 그래서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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