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기술 배우러왔다가 마음 전하러다니죠” [한울통나무학교 ‘평화의 집짓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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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1.05 13:42:21
  • 조회: 863
서로 기대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한울 통나무학교(www.hwlog.com). ‘평화의 집짓기 운동’을 벌인다.

운동을 이끌고 있는 김명석 본부장(43)을 필두로 지금까지 100여명 회원이 운동에 참여했다. 이들이 처음부터 자원봉사자로 온 것은 아니었다. 모두 김본부장에게 통나무 집짓는 방법을 배우러 왔다가 ‘발목 잡힌’ 셈이다.

회사원, 자영업자, 대학교수 등 직업이 다양하다. 자신이나 부모님의 전원주택을 짓고 싶었다. 어떤 스님은 절을 세우기 위해 배웠다.

들어오고 싶다고 누구나 회원이 될 수는 없다. 김본부장은 “다른 목적이 있는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한다”고 말했다. 돈만 많이 후원하겠다는 기업체도 마구 받아주지 않는다. 상업적으로 이용당할 것을 걱정해서다.

일단 한번 들어오면 훌쩍 떠나기가 쉽잖다. 김본부장을 비롯한 운영진과 회원은 끈끈한 정으로 연결돼 있다.

회원이 되면 통나무집 짓는 기술을 충분히 가르쳐주는 대신 책임을 부여한다. 한 배를 탄 이상 ‘평화의 집짓기’에 동참토록 한다. 매달 1만원씩 회비를 낸다.



“사실 운영비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기업체에 선뜻 손을 내밀지는 않을 겁니다. 수억원씩 쓰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큰 돈일수록 부담이 커지죠.” 한종철 상임고문(48)은 “봉사 나가면 밥값까지 자체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본부장은 “큰 돈을 억지로 끌어 모으려고 마음먹으면 모을 수 있다”며 “10억원을 주는 것보다 10원이라도 잘 쓰는 데 더 가치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 당장은 돈보다는 소외된 곳에서 몸으로 봉사할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 출신으로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김본부장은 1984년 노동운동에 뛰어들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회사 압력을 못 견뎌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국땅을 1년간 전전하다가 통나무집 짓는 기술을 익혔다. 귀국한 뒤 통나무집 분양사업에 나섰다. 그러나 사기를 당하는 등 2차례나 실패해 길바닥에 나앉을 지경에 이르렀다. “쌀 떨어지고 아이들 아픈데 병원비도 없었습니다. 그때 가난한 사람의 심정을 뼈저리게 알았지요”

끝내 다시 일어섰고 지난 97년 경북 경주시 안강에서 통나무학교를 열었다. 이 무렵 무료 집수리 봉사를 시작했다. 미장을 하거나 타일을 까는 일, 화장실 고치기, 지붕과 문짝 교체, 보일러 수리는 물론 장애인 가정 목욕 봉사와 청소까지 도맡았다.

“도와드리려고 갔는데 처음에는 거부반응이 컸습니다. 특히 장애인 가운데 말이 잘 안 통하는 분도 있죠. 그러나 1시간 정도 대화하면 눈만 봐도 압니다.”

그동안 20여집을 수리해준 것이 전부다. 욕심만큼 쉽지 않았다고 한다. 넉넉하지 않은 자금도 문제이지만, 도움이 절실한 곳을 찾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어떤 집은 미리 작업 준비를 끝내놓고 연락하는가 하면, 이것저것 까다롭게 요구하는 곳도 있습니다. 저건 아니다 싶었죠. 그 뒤로는 정말 필요한 곳이 어딘지 사전답사와 회의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통나무학교에 5기로 들어왔던 신동진씨(32·경주시 성건동)는 지금까지 대구와 안강 지역에서 2차례 봉사활동을 벌였다.

안강의 장애인 부부와 자녀가 사는 집은 참담했다. 블록으로 둘러싼 재래식 화장실은 비바람만 겨우 막아줄 뿐 하늘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신씨 일행 20여명이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수리에 나섰다. “작업을 마치자마자 바로 돌아왔습니다. 식사 대접 등 민폐를 끼쳐드리기 싫었거든요.”

‘평화의 집짓기 운동’은 원대한 목표를 품고 있다. 훗날 경치 좋은 땅에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살 보금자리를 짓는 일이다.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며 근사한 통나무집을 지을 것이다. “만일 제가 꿈을 이루지 못하면 누군가 반드시 해낼 겁니다. 저는 작은 촛불을 붙이는 사람일 뿐입니다. 여러 회원들이 더 큰 불을 지펴야겠지요.”

“겨울이 오기 전 손봐줄 곳이 많은데 걱정”이라는 김본부장은 “아직 큰 집은 지어드리지 못하지만 작은 것을 고치는 데 보람을 느낀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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