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연극은 ‘차이’를 보여줘야 [ 여성연출가 오경숙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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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1.04 10:20:35
  • 조회: 973
극단 뮈토스 대표 오경숙씨(49)는 낯익은 것을 낯설게 만드는 실험적인 연출가다. 창단작인 그리스 비극 ‘사람들’(1990)은 7시간짜리로 한국 최장시간공연 기록 보유작이다. 그는 “미국 유학(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 대학원) 시절, 이틀에 걸쳐 18시간짜리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서 “뭔가에 사로잡힌 채 일상에서 벗어나는 체험이 관극(觀劇)의 요체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다른 연출작들도 ‘낯설다’. ‘리어’(1992)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합쳐놓고 등장인물의 성별을 맞바꿨다. 록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1994)에서는 오웰의 ‘1984년’과 교직시키면서 배우에게 직접 연주를 시켰다. 한국계 미국여성 차학경 원작의 ‘딕테’(1998)에서는 관객이 연극을 보는 게 아니라 받아쓰기를 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했다. 연극의 전통적인 소통방식을 전복시키고 있다.

연극평론가 노승희씨는 ‘오경숙 연출작품에 나타난 무대공간 연구’에서 오씨 연출작들의 특징으로 ▲무대의 시각적 이미지화 ▲배우 연기의 추상적 움직임과 직선 운동 ▲무대의 구획적 분할과 장면의 병치 ▲소리·음악의 이미지화를 꼽으며 ‘포스트모던 연출’이라고 밝혔다.



오씨는 14년간 10여편을 연출했는데 또다른 공통점은 대부분 관객들이 불편해 했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흔치 않은 기회였다”고 말한 뒤 두번 다시 그의 작품을 보러 오지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가 재현적인 게 아니다보니 “왜 연기를 저렇게 하냐”며 학을 뗐다. 주류연극에 대한 연극적 탈선(脫線)의 업보인 셈이다.

이에 대해 오씨는 “타자(소수)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첫걸음은 불편함”이라면서 “누군가를 뭔가에 대해 이해시키고자 하는 행위 자체가 권력적일 뿐더러 온전한 의사소통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연극을 통해 ‘똑같은 현상을 다르게 다루는구나’하는 ‘차이’를 보여줄 뿐 관객이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재확인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연극관은 ‘인간존재와 삶은 고통이어서 뭘 해도 덜 고통스러울 수는 없다’는 인간관의 소산으로 여겨진다. 많은 작품들이 반성과 사랑을 촉구한다고 해서 그런 연극을 하는 사람은 물론 관객과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는 “고통스러운 생을 견디고 살아내는 게 오히려 훌륭한 삶의 태도”라면서 “따라서 ‘차이’를 느끼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괴로워하며 타자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인식하면서 연극을 만들고 보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렇듯 “연극이라는 공공적 매체에 사적인 세계를 담아내는 딜레마” 속에서 그 특유의 갈등적·복합적인 연극성이 솟구치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의미의 무의미화”라고 요약했다. 그는 연극작업 때 스태프·배우에게 “‘빨간색’이라고 말하지 않고 ‘빨간색은 아닌 듯하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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