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아마존 정글 마라톤 도전 시각장애인 이용술·도우미 안기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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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0.29 14:34:26
  • 조회: 516
이용술씨는 중도실명자다. 1981년 시력을 잃었다. 우연히 휩쓸려 든 싸움에서 시신경을 다쳤다. 학창시절 안 해 본 운동이 없을 정도로 활동적이던 이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1년여 동안 전국 각지의 용하다는 의사를 찾았지만 모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시각장애 2급’이란 냉정한 판결만 돌아왔다.

몇 달을 술로 보냈다. 보다 못한 동생이 헬스클럽으로 데리고 갔다. 하루에 2시간씩 러닝머신 위에서 달렸다. 몸안 가득 쌓여 있던 분노가 조금씩 사라졌다. 그제야 서울맹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직업교육을 받으며 같은 처지의 아내를 만났다.

86년부터 밖에서 달렸다. 동생이 흔드는 방울소리를 따라 학교운동장을 뛰었다. 조금씩 자신이 붙었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싶었으나 접수를 받아주지 않았다.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동생 이름으로 하프마라톤대회에 나가 도둑달리기를 감행했다. 앞사람 발소리를 따라 완주했다. 풀코스도 똑같은 순서를 밟았다.



마라토너 사이에 이씨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도우미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어느 대회에 나가든지 쉽게 도우미를 구할 수 있었다. 어느새 유명인사가 됐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삶에 또 다시 악재가 찾아들었다. 96년 사기를 당했다. 하루종일 안마일을 해 모은 전재산이 사라졌다. 1년 넘게 재판에 매달려 승소했지만 돈은 찾을 수 없었다.

분노가 다시 쌓였다. 화병이 생겨 자다가도 몇번씩 벌떡 일어나곤 했다. 그때도 해결책은 달리기였다. 화를 이기지 못하면 달리기 시간을 늘렸다. 달릴 때만큼은 마음이 편해졌다.

마라톤 풀코스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극한상황에서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고 싶었다. 가장 먼저 ‘사하라 마라톤’이 눈에 들어왔다. 1년여의 준비 끝에 지난해 4월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렀다. 아마존의 도우미 안기형씨도 사하라에서 만났다.

젊은 시절 실업팀에서 마라톤 선수로 활약한 안씨는 사하라 마라톤에서 아시아 선수 중 최고인 38위를 기록했다. 운동을 재개한 지 3년 만의 일이었다.

88년 선수생활을 그만둔 뒤 12년 동안 운동과 담을 쌓고 지냈다. ‘마라톤 열풍’도 남의 일이었다. 그런데 2000년 나이 마흔에 늦둥이가 태어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아들에게 뭔가를 물려주고 싶었다. 고민 끝에 “그래, 아빠의 ‘불굴의 의지’를 남겨주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도전한 것이 사하라 마라톤이었다.



지난해 9월 이씨가 “아마존 정글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다”며 안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안씨 역시 아마존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결정이 쉽지 않았다. 이씨의 도우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상위 입상과 기록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마라톤 정신’이 먼저였다.

평일에는 직장에 나가야 했기에 개인운동에 주력했다. 주말이나 휴일에만 경기 수원시 광교산에서 함께 산악훈련을 할 수 있었다. 1년 동안 조금씩 몸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사하라 마라톤을 완주한 경험이 자신감을 북돋워줬다.

지난 9월 8일 두 사람은 한국을 떠났다. 미국 LA를 거쳐 40시간 만에 브라질 상파울루에 도착했다. 상파울루에서 다시 아마존강 근처 항구도시 산타렘으로 향했다. 참가선수 93명이 배를 타고 정글 안으로 들어갔다. 18일 아침 정글중심에서 출발해 24일 산타렘으로 돌아오는 200㎞ 코스였다.

서로 팔을 줄로 연결해 안씨가 앞장서고 이씨가 그 뒤를 따랐다. 1주일 동안 먹을 식량과 비상약품을 등에 지고 달렸다. 정글은 예상보다 험난했다. 길은 좁고, 온통 가시나무 투성이였다. 이씨는 하루종일 허리를 굽히고 걸어야 했다. 그렇게 조심해도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습기 때문인지 상처는 생기자마자 곪았다. 비상약품을 준비해 갔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달리는 지루한 일정이 이어졌다. 각국에서 온 참가자들은 이씨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시각장애인이 울트라마라톤, 그 중에서도 정글마라톤에 출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사하라 마라톤을 완주하고 왔다는 얘기에는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6일이 지나갔다. 쉬지 않고 80㎞를 달리는 최악의 5번째 코스도 이겨냈다. 그러나 대회 마지막날 결국 이씨는 쓰러졌다. 팔다리에 난 상처는 모두 곪아 있었고 몸은 탈진하기 직전이었다. 이씨는 “원했든 원치 않았든 난 시각장애인을 대표하는 마라토너가 됐다”며 “죽어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씨까지 실격시키겠다는 주최측의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멈춘 자리에 한국에서 가져간 태극기를 묻었다. 결국 안씨 혼자 결승선을 통과했다. 93명 중 21위였다. 완주에 성공한 참가자는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대회가 끝난 지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두 사람은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씨는 내년 4월 후배 시각장애 마라토너와 함께 고비사막에 갈 생각이다. 그리고 아마존에도 재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만큼 매력적이었다”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다시 가서 결승선을 제일 먼저 통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60일 동안 4,800㎞를 달리는 ‘미대륙 횡단마라톤’.

“집사람이 말리겠지만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꼭 하고 싶어요. 이제 마라톤은 내 인생의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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