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한없이 낮춘 마음, 자유를 낳았네 [황토화 그리는 지리산 ‘지통사’상묵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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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0.28 11:54:32
  • 조회: 672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형제봉 중턱에는 지통사가 있다. 상묵 스님이 14년째 혼자 지키고 있는 절이다. 법당은 조립식 임시건물로 지어졌다. 옛 절터만 남아있는 곳으로, 작은 절을 짓는 것이 상묵 스님 소망이다. 세월이 흐르며 소망은 그림을 낳았다.

‘화가 스님’이 머무는 지통사 텃밭에는 고랭지 가을 배추가 파릇파릇하고 향 진한 산나물 고수가 봄 냉이처럼 자라나 있다.

백운산이 발 아래로 펼쳐지는 지통사 앞마당은 멧돼지 가족 놀이터. 아침녘이면 지렁이를 파먹느라 땅을 헤집은 발자국이 요란하다. 한번씩 바람결에 뚝뚝 떨어지는 홍시와 열매 맺은 작설이 깊어가는 산중 가을을 소곤댄다. 섬진강변까지 단풍이 내려가면 지통사는 벌써 겨울이다.

폭설이 내리면 이듬해 봄이 되기까지 한 3개월은 꼼짝없이 갇힌다. 외부인의 발길이 없으니 공부하기 안성맞춤이다. 요즘 스님은 장작을 주워모으며 슬슬 겨울채비 중이다. 먹을거리는 혼자 입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그림거리는 잘 준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재료가 황토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황토로 그림을 그린다. 화개장터 인근 공사장에서 주운 널빤지, 나무 토막 등을 가져다가 캔버스를 만들고 그 위에 물에 갠 황토를 입힌다. 우윳빛이 도는 것부터 진한 갈색, 붉은색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약간의 먹과 유화물감만 있으면 된다. 다른 절의 스님들이 어디에 좋은 황토가 있더라 알려주면 부대자루와 삽을 들고 찾아나선다.



“주변 흔한 것을 가져다가 내 마음을 옮깁니다. 그림이나 예술이 별 거 있습니까. 부처님 모시고 수행하는 것도 다르지 않아요.”

그림에는 아이들이 많다. 줄지은 개미마냥 감나무 위·아래에 붙어있는 아이들, 새참 나르는 오누이, 보름달 마중 나가는 동네 녀석들…. 황토 위에 둥글넓적한 얼굴들이 정겹다. 어린시절 노닐던 남해 바닷가의 고향 모습도 스며있다. 황토 그림은 땅에서 났다가 언젠가 흔적없이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누가 알든 말든 뒷면까지 정성껏 황토를 칠한다. 옷(액자)은 걸치지 않는다.

인간의 참된 자유는 대자연과의 조화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황토 그림 이전에는 섬진강 조약돌과 모래로 그렸다. 캔버스 위에 섬진강 모래를 입히고 주황색 은어 한마리를 풀어놓은 그림이나 조약돌에 눈과 코를 그린 것은 예술과 자연에 따로 경계가 없음을 무언 중 말해준다.

전시회는 96년 산중인 지통사에서 처음 열었다. 녹차를 대접하는 조촐한 전시회로 준비했지만 지리산 마을 사람들은 물론 서울과 전국에서 구경왔다. 지통사와 서울 덕원미술관 등에서 그동안 10여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2000년 프랑스에서 초대전을 제안받았다. 스님은 오는 11월 3일~16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 ‘경향갤러리’에서 기획전을 연다.

스님은 그림을 그리며 큰 가르침을 얻었다. ‘마음을 낮추라.’ 스님은 절 터에 두세 사람이 겨우 앉을 만한 작은 정자를 만들었다. ‘하심정(下心亭).’ 만약 지통사를 지나는 이가 있다면 이곳에 잠시 몸 맡기고 하늘 아래 굽어진 산자락 바라보며 낮추고 낮추고 또 낮추었으면…. 스님의 그림처럼. 스님의 또 다른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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