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광끼 빠진 무대는 가짜다”… 여성연출가 김아라씨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0.14 10:14:39
  • 조회: 817
김아라씨(48)는 ‘연민의 여사제(女司祭)’다. 빨간 립스틱과 검정 선글라스에 집착하는 새로운 사제다. 연극에서는 광기의 9단이면서 일상에서는 백치의 문외한인, 연극에 대한 망집의 소유자다. 그는 “외골수이거나 무지한 인간”이라고 자평했다.

지난 ○○○간 ‘김아라 표’ 연극은 비극 일색이었다. ‘연극의 히말라야’인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오체투지로 종주해왔다. 그가 만든 ‘축제극단 무천’의 창단 10주년 기념작 ‘레퀴엠’(2001)이 그나마 블랙코미디였다. 하지만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낸 부조리극이어서 비극 범주에서 반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기쁨의 저변은 슬픔”이라면서 “불완전한 인간·관계·상황에 대한 연민 때문에 비극을 하게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부르주아의 철부지 딸 같은 어투와 표정으로 연민의 모스 부호를 세상에 타전하는 형국이다. 연민이란 자기의 슬픔을 뛰어넘어 인간조건의 보편적 슬픔을 나눠 갖거나 감싸는 귀족적 정서가 아닌가.

또 그는 ‘여사제’다. 약 20편의 연출작들이 ‘현대적 제의’였다. 충동과 격정을 거세당한 애완인간의 구원을 위해 영감에 가득찬 주문을 읊었다. 원전을 뒤집고 까부숴서 캐낸 원초적 생명력을 동시대 관객들의 템포와 리듬으로 찬양했다. 돈으로 요약되는 우상과 악몽을 거둬내기 위해서다. 장르 해체 이전의 총체적 연희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탄생시킨 ‘복합장르 음악극’을 발명, 연극으로 삶의 총체성에 육박하고자 한다.

그는 “연극은 생명의 축제요, 연극인은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면서 “무한한 상상력과 미친 짓(나름의 스타일)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극인=광인’이 보기에 요즘 한국연극은 평범하고 식상하며 그래서 가짜다. 그는 “연극인은 모두 색깔론자여야 하는데 연극인들이 너무 제정신이다”라고 죽비를 내리쳤다.



이 연민의 사제는 근본주의자이기도 하다. “노동품을 팔지언정 영혼을 팔지는 않는다.” 연극의 성스러움과 속됨을 불퇴전의 이분법으로 가른다. 그는 영화배우 강수연씨를 무대에 데뷔시킨 ‘메디아 환타지’(1995)를 빼고는 무대에 익숙지 않은 스타를 캐스팅한 적이 없다. 연극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심지어 관객을 선택·선별·차별한다. 그의 팬들은 충실한 신도에 가깝다. 그는 “1만원짜리 티켓과 연극을 맞바꿀 수 없다”고 했다. 연극으로 인간의 위엄과 품위를 지키고자 안감힘 쓰는 것이다. 대중성 있는 연극을 만들지 못해서는 아닌 듯하다. 지난해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때 공연한 복합장르 음악극 ‘에밀레-천년의 소리’에서 70여일간 하루 평균 2,000여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창조의 순수한 기쁨을 알고 기존질서에 대한 전복의 쾌감에 부르르 떠는 배우·관객만 상대하고 있다. 그에게 무대는 성소(聖所)요, 연극은 자축연일 법하다. 그는 “연극은 꿈꾸는 자들의 독점적 소유물”이라고 했다. 삶과 상상력으로 한 사회를 반성시킬 광기의 카타콤을 꿈꾼다. 인생을 저지른 대가로 경기 죽산 야외캠프에 극단·극장·아카데미를 완비한 연극 베이스기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는 연극현장에서는 여성으로서의 자의식·한계를 느껴보지 못했다고 했다. 굳이 여성적인 면모를 찾자면 “일생을 통해 권력을 탐하지도 추구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미래를 저당잡히지 않은 연극인을 일류로 꼽는다. 인생의 육즙을 짜내지 못하는 배우를 ‘영원한 3류’라고 내친다. 그가 현재에 미치도록 충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에겐 미래가 없다. 매 공연이 그렇듯이.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