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절반의 역사’는 어디 갔을까… ‘역사속 여성인물 찾기’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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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10.13 10:11:30
  • 조회: 987
소서노, 빙허각 이씨, 허황후를 아십니까.

이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온조, 정약용, 김수로왕은 잘 알려졌지만 이들의 이름은 생소하기만 하다. 남성 위인들만큼 뛰어난 업적을 남겼지만 역사가 기억해주지 않는 이 땅의 여성들이다.

절반의 역사. 그 수많은 대왕과 장군과 선비들의 역사 속에서 여성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저 꼽으라면 신사임당, 유관순, 선덕여왕 정도. 그 시대를 살았던 ‘여장부’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들, 역사속 여성위인을 찾기 위한 축제가 최근 서울과 수원에서 열렸다.

지난 3일 서울시청앞 잔디광장에서 치러진 ‘제2회 대한민국 여성축제’의 두가지 주제는 ‘여성의 시선으로 난자를 축복하기’와 ‘역사속 여성인물 바로세우기’. 이중 ‘여성인물 세우기’는 서울, 경주, 김해, 나주 등 지역 여성단체와 역사모임에서 자발적으로 발굴한 역사속 여성인물들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하는 행사였다. 대한민국여성축제 조직위원회가 선정한 여성위인은 웅녀·신사임당·선덕대왕·빙허각 이씨·허황후·장화황후 등 6명. 이들의 이야기는 무대에서 퍼포먼스로 꾸며져 일반에 전해졌다.

웅녀와 신사임당, 선덕대왕은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 시대의 가치속에서 왜곡된 채 전해진 부분을 바로잡으려는 취지에서 선정했다. 웅녀는 참고 인내하는 여성으로의 의미만 부각된 채 보조적 인물로 존재하며, 신사임당은 천부적 예술적 재능과 강한 자아를 가진 주체적 여성이었지만 현모양처의 대명사로만 부각되고 슈퍼우먼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해석되어 왔다.

선덕대왕은 묘비에는 선덕대왕이었지만 조선 이후 여왕으로 불려왔다. 허황후는 가야국 김수로왕의 비이며 가야제국의 공동시조로 왕과 동등한 권력을 가졌던 인물. 고려 태조 왕건의 비였고 여자 장보고라 불리는 장화황후, 조선후기의 독보적 실학자 빙허각 이씨 등이 행사의 화두였다. 행사 주최측은 앞으로도 해마다 지역에서 더 많은 여성위인들을 발굴할 계획이다.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5일까지 경기 수원시 효원공원에서 열린 ‘여성실학축제’는 이 지역에서 활동해온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를 집중조명하는 자리였다.

빙허각 이씨에 대한 논문을 쓴 정해은 박사(한국사)는 “이씨는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정약용이나 박제가 등 어떤 실학자와도 어깨를 견줄 만한 실학자였지만 여성이었기 때문에 인정을 못 받았다. 양반의 틀에서 해석할 때 여성의 삶을 알려주는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또 찾아낸 사료들이라도 남성중심의 입장에서 덧칠된 역사일 수밖에 없다. 편지나 일기, 자서전, 문학, 구술사, 당대 미술작품이나 풍자화 등까지도 사료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와 별도로 지난해 6월에는 ‘여성인물을 화폐에! 시민연대’(대표 동덕여대 여성학과 김경애 교수) 모임이 발족해 화폐속에 여성인물을 넣자는 운동을 펴오고 있다. ‘여성으로서 바꾸고 싶은 것들’을 주제로 진행된 여성학 수업에서 ‘화폐속 인물에 여성이 없다’는 문제의식이 싹터 이뤄진 모임. 학생들과 직접 토론하고 조사하면서 신사임당, 유관순, 명성황후, 선덕대왕, 이태영, 김만덕 등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귀감이 될 만한 6명을 선정했다.

김교수는 “여성위인을 당장 화폐속 인물에 모시자는 것이 아니라 여성인물들을 발굴하고 많이 알리는 의미가 더 크다. 앞으로도 발굴인물들을 재평가하고 알리는 작업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별 여성위인

#실학자 빙허각 이씨=이씨가 쓴 ‘규합총서’는 여성이 썼기 때문에 ‘가정백과’로 폄하되지만 방대한 내용을 쉽게 풀어쓴 훌륭한 실학서였다. 당시 의식주에 대한 학문적 탐구는 남녀를 떠나 실용적 학문을 추구했던 ‘실학’의 탐구대상이었다. 주사의(술과 음식), 봉임측(바느질과 길쌈), 산가락(시골살림의 즐거움), 청낭결(병 다스리기), 술수략(집의 방향에 의해 길흉 가리는 법) 등 총 5장으로 구성.

#사업가 김만덕=채제공이 지은 ‘번암집’에 선행으로 기록된 제주여인.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고 기녀의 수양딸이 된 후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객주집을 차렸고 박리다매, 신용본위 등의 원칙을 지켜 몇 년 만에 제주의 거상이 됐다. 정조대왕 시절 제주에 계속 흉년이 들자 육지에서 양곡을 사들여 구호곡으로 사용, 제주사람들을 기아에서 구했다.

#여권운동가 이태영=한국 최초의 여성변호사로 평생을 여권과 인권 신장에 바친 우리나라 여성계의 대모. 1949년 여성 최초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다 현 가정법률상담소의 전신인 여성법률상담소를 세운 후 여성운동가로 변신했다. 전근대적인 가족법 개정에 투신해 89년 상속범위를 남녀 차별없이 친족 8촌, 인척 4촌까지로 확대하고 이혼여성배우자의 재산분할청구권 등을 인정한 가족법을 입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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