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치즈 덕분에 치~즈 합니다”… ‘숲골유가공연구소’ 김상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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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9.07 11:15:39
  • 조회: 651
전북 임실군 임실읍 금성리에는 ‘숲골유가공연구소’가 있다. 연구소 앞마당 격인 논에는 파릇파릇한 벼가 자란다. 뒤로는 넓은 초지가 펼쳐져 있고 젖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연구소에는 ‘목장형 발효유의 효시’라는 설명이 따라다닌다. 대규모 공장생산이 아닌 목장에서 소량으로 바로 생산하는 발효유를 맨 처음 만들었다.

숲골유가공연구소 김상철 사장(39)은 한 낙농가에서만 원유를 공급받아 요구르트와 치즈를 생산한다. 직원은 임실 주민 15명. 지난해 1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숲골 요구르트와 치즈는 생활협동조합(생협) 등을 통해 먹거리를 장만하는 사람에겐 낯설지 않다. 2000년 2월 판매를 시작했다. 생협과 유기농 관련 쇼핑몰, 서울 일부 백화점에서 팔린다. 요구르트는 탈지유가 아닌 신선한 원유를 사용하고 유기농 과일즙을 넣어 만든다. 유통기한이 포장후 10일로 다른 제품에 비해 짧은 편이다. 3개월간 발효시킨 치즈는 가공치즈와 달리 유산균이 살아있다.



김사장은 농사꾼이었다. 임실이 고향으로 전주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 농사에 뛰어들었다. 농사꾼으로 평생 열심히 일했지만 언제나 지독한 가난에 시달린 아버지의 한을 풀고 싶었다. 가난한 농촌을 부자마을로 만들고도 싶었다. 3남2녀 중 막내였던 그는 등록금이 없어 1년 늦게 중학교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담임교사에게 직접 부탁해 6학년을 두 해 다녔다.

“땅도 사람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기농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일곱 마지기 농사를 지었는데 수확이 많지 않아 힘들었죠.”

94년 종교단체를 통해 스위스로 농업연수를 가게 됐다. 1년간 머무르며 유럽의 농업과 낙농을 체험했다. 이때를 계기로 95년부터 젓소 7마리를 키우며 낙농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꿈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천정부지로 오른 사료값을 감당하기 힘들었고 대기업은 납품한 원유 대금으로 분유를 떠넘겼다.

“원유를 갖고 부가가치 높은 상품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다시 스위스로 갔죠. 3개월간 유가공 전문학교에 다니면서 낙농제품 생산과 유통을 배웠습니다.”



고향에 돌아와 요구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형 목장 유가공의 발전을 강조한 순천대 배인휴 교수를 찾아가 자문을 얻었다. 요구르트는 발효유의 일종으로 우유류에 젖산균을 접종·발효시켜 응고시킨 것이다. 젖산균 양과 발효시간, 온도 등을 달리하며 연구에 몰두했다. 생산된 요구르트를 유리병에 담아 이웃에게 시식케 했다. 차츰 돈을 주며 만들어 달라는 사람이 생겨났다.

“상품성 있는 요구르트를 만드는 데 꼬박 1년이 걸렸어요. 맛은 물론이고 건강에도 좋은 저만의 요구르트를 만들고 싶었죠.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꿀병에 요구르트를 담아 사업허가를 받으러 농림부에 찾아갔죠.”

농림부 담당자는 당황했다. 대기업이 아닌 개인이 “목장에서 바로 만든 요구르트”라며 내밀기는 처음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생산해 제품화한 전례가 없다며 허가하지 않았다. 사업허가증을 받는 데 또 꼬박 1년이 걸렸다.

첫해는 하루 20㎏을 생산했다. 다음해는 100㎏으로 늘어났다. 해를 거듭하면서 주문이 많아졌고 요즘은 1일 생산량이 원유 기준으로 요구르트 1.3t, 치즈 500㎏이다.

우유값 파동이 닥칠 때마다 찾아오는 낙농가가 많다. 김사장은 제조 노하우와 함께 자신의 경험담을 상세히 알려준다. 발효제품은 작품과 같아서 방식을 알아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과 품질이 차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같은 시행착오를 다른 사람이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생산·유통·판매는 물론 사업허가에 필요한 증빙서류와 절차까지 정리해 배교수를 통해 공개했다.

“아직 국내에는 유기낙농 인증을 받은 곳이 없어요. 원유를 공급하고 있는 낙농가와 협력해 5년이내 유기낙농 인증을 받은 원유만을 사용한 제품을 만들 생각입니다. 유가공 제품도 다양화해볼 계획이구요.”

낙농의 꿈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유가공 전문학교’를 만드는 게 목표다.



#임실 치즈의 역사=전북 임실은 국내산 치즈가 처음 만들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벨기에 출신인 벽안(碧眼)의 지정환 신부(72 )가 어려운 농촌 살림을 돕기 위해 1967년 12월 국내 처음으로 치즈 공장을 세운 데서 명성이 비롯됐다. 지리산 자락에서 자란 소의 신선한 원유를 사용한다는 점도 인기 비결이다. 임실치즈의 유명세를 타고 이곳 치즈만을 이용해 만든 피자전문 회사들도 만들어졌다.

지신부는 부안 성당의 주임신부로 재직하던 60년대 초 간척사업을 통해 가난한 농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64년 임실 성당 지도신부로 옮겨오면서 지역 농민들의 자활기반으로 치즈공장을 세웠다. 그는 81년 임실 치즈공장을 농민이 주인인 협동조합 형태로 바꾼 뒤 다른 곳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임실에 치즈공장이 세워질 당시 ‘한국에서 무슨 치즈공장이 성공하겠느냐’는 반대가 많았다. 처음에는 산양유로 만들었다. 치즈는 고사하고 우유 맛조차 낯선 당시 특유의 향을 풍기는 유럽식 치즈 맛이 국내 입맛에 맞을리 없었다. 초창기엔 미군부대에 납품을 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10㎏의 우유를 가지고 시작한 치즈공장은 매일 5t의 치즈를 생산할 만큼 성장했다. 임실치즈농협은 400여명의 농민들이 꿈을 키우는 공장이 됐다.

임실치즈농협은 인삼·김치 치즈 등 한국형 치즈를 개발했다. 임삼치즈는 인삼을 분말·수삼분쇄물·농축액 등으로 나눠 가공한 것이다. 일반적인 가공치즈가 어린이·청소년에 맞춰 개발되고 있는 것과 달리 중장년층을 겨냥해 차별화했다. 우리의 전통식품인 김치를 치즈와 결합시킨 김치치즈도 생산하고 있다.

최근 임실군은 과학기술부가 추진하는 지방과학기술혁신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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