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들어볼텨? 겁나게 좋아… ‘섹소폰 늦바람’ 이택범·황동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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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9.02 11:53:59
  • 조회: 638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 가는 한번뿐인 인생. 평생 하고픈 것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겄는가. 그것도 귀밑머리 희끗희끗해진 뒤 가슴 속 품었던 소원을 실천한다면 참말 대견허지.

여기 충남 청양에 그런 아저씨들이 있어. 고추보다 매운 청양 아저씨 얘기 한번 들어볼텨?

청양에서 알 만한 이는 다 알어. 읍내 대전농약방 주인 이택범씨(57)하고, 동현고물상 하는 황동현씨(57)라고. ‘색소폰’이라고 있잖은가. 두 양반이 그걸 배웠다지 뭐여. 고부라진 동파이프처럼 생겼는디 소리는 겁나게 좋아.

아따 내일 모레면 환갑인디, 저런 걸 언제 다 배웠디야.

“나이 오십에 애들두 다 크고, 먹고 살 만하니께 음악이 하고 싶잖어. 내가 먼저 사서 막 시작한 참에 이 친구가 묻지 않겄어.”(이씨)

“어이, 친구. 나도 그거 한번 배워볼까.”

“잉, 그려.”

이렇게 해서 둘이 1997년 쉰이 넘어 색소폰을 시작혔어. 평생 악기 한번 불어보겠다던 소원을 끝내 풀었지. 값이 한대당 5백만원은 하는디, 두 명 모두 서너번씩 바꿨으니 색소폰을 신주 모시듯 하게 됐지. 꼭 값 비싸서 그런 건 아니지마는.



둘은 30년 넘은 친구 사이여. 두 사람은 노래 부르기도 좋아해 자주 어울렸는디, 악기 배우고 나서는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붙어다녀.

이씨가 농약방을 한 지는 28년째인디 앞서는 이발관을 했어. 손님이던 황씨와 서로 알고 지냈다지. 황씨는 양은그릇을 지고 다니며 팔았고, 나중에 고물상 차려 24년 동안 한 우물을 팠지. 저런 집념이 있으니 뒤늦게라두 악기를 불 수 있겄지.

“어려서 피리 부는 걸 좋아했지. 초등학교 3학년 때 교무실에 불려가 연주하면 각 교실 마이크로 내 피리 소리가 퍼져나갔어. 직접 대나무를 깎아 만든 피리(일종의 퉁소)였어. 그 뒤로 음악은커녕 먹고 사는 게 급해 졸업도 못했지. 그때부터 학교하고는 담을 쌓았어.”(황씨)

음악 열정에선 이씨도 뒤지지 않어. 하모니카 잘 불고, 기타도 쳐봤고, 나중에 러시아 갔을 때 아코디언을 사오기도 했지.

“10대 시절 군악대 색소폰 소리에 감탄했어. 불고는 싶은데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서 얼매나 망설였는지 몰러.”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구, 늦깎이의 열정이 더 뜨거운 법이지. 이씨와 황씨는 읍내 체육센터 지하실을 연습실 삼아 밤 새워가며 색소폰을 익혔지. 평소 리드(reed·입을 대고 부는 부위)만 따로 떼서 들고댕기며 불어댔어.

헌데 어디 생각만큼 쉽겄어. 아무리 불어도 ‘삑삑~’ 소리밖에 더 나? 안정된 소리 내는 데만 얼추 한달이 걸렸지 아마. 그냥 배에 힘만 주고 불면 소리가 나는 줄 알았는디 그게 아니었던 겨. 주위 사람들은 또 얼마나 귀가 아팠겄어. ‘예술’이 하루 아침에 될 턱이 있나. “도·레·미·파…, 계명은 그럭저럭 익혔어. 그란디 악보를 볼 줄 알어야 말이지. 장조·단조 같은 걸 으째 알겄어. 둘 다 가방끈이 짧아 할수록 더 힘들었지.”(황씨)

수소문한 끝에 둘은 읍내에 음대 나온 젊은이가 있다는 걸 알았어. 그 친구한테 악보 읽는 기초를 익혔지. 그런데 색소폰 전공은 아니라 한계가 있었던 겨. 안되겄다 싶어 대전의 색소폰 연주자가 운영하는 동호회에 1주일에 2번씩 가서 배웠어.

하지만 여전히 체계적인 교육에 목말렀지. 그러다 재수 좋게 청양군 장평면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색소폰 전문가를 알게 된 겨. 서울의 방송국 악단 출신이라는디 기본기부터 새로 잡아줬어. 그에게 여섯달을 배우면서 실력이 부쩍 늘었댜.



“색소폰 소리는 감정에 아주 와닿지. 아무리 승질이 나도 이 소리 들으면 마음이 착 가라앉잖어. 비오는 날은 지발 불지 말라는 아줌마 팬두 있어. 그러잖아도 심란한디, 더 찌릿찌릿하다고. 허…. 배울 때는 삑삑거려 시끄럽다고 하더니만. 이제 소리 좀 나니께 주위에서 왜 자주 안 부냐고 그랴.”(이씨)

솜씨가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초청들을 많이 해. 체육행사나 경로잔치, 결혼식 축하연 같은 자리에 자주 불려댕기지.

“처음에는 서로 음정이 틀리거나 한쪽에서 ‘삑’ 소리가 나곤 했었지. 그럼 식은 땀이 쫙 나지 뭐. 지금은 옥타브를 올려 서로 고음·저음을 나눠 연주할 수준은 되거든.”(황씨)

“지난해 겨울에는 부탁을 받고 충남 연기군 전의면까지 갔어. 엄니는 팔순이고, 아들은 회갑이라 큰 잔치가 열렸어. 2월인데 오질나게 추워 비닐하우스 안에서도 손가락이 얼어 고생 많이 했지. 3년전 가을에는 결혼식장에서 연주를 하는디 처음이라 그런지 실수를 몇번씩이나 하고 간신히 끝냈어. 10분 전 연습 때까지도 문제 없었는디 떨려서 그런지 잘 안되데.”(이씨)

나중에 전주 결혼식장에서는 연주를 잘 해 기립박수에 앙코르까지 받았지. 지난 29일에도 청양읍 체육대회 식전행사 오프닝무대를 장식했어. 애창곡은 ‘만남’ ‘사랑’ ‘이별의 인천항구’ ‘애수의 소야곡’ 같은 트로트. 이제 색소폰을 배우러 오는 ‘문하생’도 2명이나 생겼어.

“서울 탑골공원 같은 데서 노인들한테 무료공연하는 거 참 보기 좋데. 우리도 한번 해볼라구. 앞으로 솜씨가 더 좋아지면 제대로 된 무대에서 공연도 해보구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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