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서민과 늘함께하는 풍향계… 37년 택시기사 추용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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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8.19 09:52:07
  • 조회: 492
“이까짓 더위, 일 열심히 하면 저절로 잊어버려요. 예전엔 물장사들이 파는 찬 보리차 서너 대접으로 하루를 버텼는데 요즘은 에어컨 켜 놓고도 힘들다고 난리니….”

서울 개인택시 운전사 추용수씨(65). ‘대한민국 최고참 택시기사’로 불리는 그는 아스팔트가 녹아 내릴 듯한 폭염에도 쉴 새 없이 도심을 누빈다. 오전 6시30분 시작해 밤 9~10시까지 지난 37년간 줄곧 운전을 해왔다. 최장기 근속 무사고 운전으로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았다.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온갖 사람을 다 만나지만 언제나 미소 띤 얼굴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인정한 ‘베스트 드라이버’로 교통봉사활동도 열심이다.

“비결이 따로 있나요.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할까. 우리 집사람이 ‘당신은 짜증나지도 않느냐’고 오히려 신기해하죠.”

추씨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옛날에는 더욱 그랬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 택시는 사람을 실어 나르는 것 말고도 손님들의 인생·진로 상담부터 정보창구·구급요원 등의 일까지 맡아했다.

국내 개인택시의 첫 등장은 1967년이다. 면허를 얻기 위해서는 ‘나이 30세 이상, 15년 무사고 운전경력, 자가주택·차고 보유, 전화기가 있을 것’ 등 까다로운 요건이 필요했다. 당시 전화기는 경제력의 상징이었다. 그해 단 4대가 운행됐다. 추씨는 이듬해 ‘5년 무사고 운전’으로 자격기준이 낮아지고 서른 살이 되면서 면허를 얻었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6·25때 아버지를 여의고 누님의 뒷바라지로 대학까지 마쳤다. 한양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당시 섬유회사에서는 기술자나 여공만을 필요로 해 첨단의 섬유공학 전공자는 오히려 취직이 어려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누님의 사업을 도왔어요. 자동차가 드물던 때라 새로 생긴 개인택시도 자기 사업이라고 생각했어요. 평생 일이 될 줄은 몰랐지만요.”

1970년대 늦은 밤 서울역 앞 광장에는 ‘식모살이’라도 하겠다며 무작정 상경한 시골처녀가 많았다. 막상 갈 곳이 없어 발만 구르는 아가씨들을 보면 네 식구가 사는 단칸방에 데려와 잠 재우고 다음날 그의 아내는 가정부 자리를 알아봤다.

“시골에서 올라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택시에 오를 때 신발을 벗고 탔어요. 깨끗한 방 같은데 어떻게 신발을 신고 있느냐면서요. 택시비 외상도 흔했죠.”

택시 안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막판까지 산통을 참다가 병원을 찾는 임산부가 많았기 때문. 택시비는 커녕 다음날 병원에 미역을 사들고 찾아가기도 했다. 광화문에는 시커먼 얼굴로 별명이 ‘깜둥이’였던 유명한 교통경찰이 있었다. 드럼통을 뒤집어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긴 팔을 사방으로 휘두르며 수신호를 보냈다. 지금 신호등보다 몇 곱절은 나았다. 자동차에 ‘깜박이’가 없던 때라 운전자들은 교통경찰에게 수신호로 운전 방향을 알렸다. 그때는 손님이 타면 요금 기계를 옆으로 눕히는 ‘닭모가지 메타’가 있었다.

운전사 사이에서는 높은 학벌 때문에 가욋일이 많았다. 동료들은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거나 사고가 발생하면 도움을 청했다. 지난 70년 개인택시조합을 처음 만들어 안전운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85년에는 복지제도를 만들어 운전자들이 갑작스런 퇴직이나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도록 했다.



“요즘은 경제가 어렵고 흉악 범죄가 많아서인지 택시에 앉아 한숨 짓는 사람들이 많아요. 가끔은 몹쓸 마음을 먹고 한강으로 가자는 사람도 있어요. 일부러 재미난 얘기도 꺼내고 인생 선배로 이런 저런 경험담을 들려주며 마음을 다잡게 하죠.”

‘아버지는 왜 회사에 다니지 않느냐’고 떼쓰던 아들 승곤씨(36)는 현대자동차에 다니고 있다.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하던 딸 희영씨(34)는 벌써 두 자녀의 엄마가 됐다. 풍족히 뒷바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남지만 부모의 도움없이 장가·시집간 자녀들이 대견하다. 아내는 변함없이 새벽 6시면 따뜻한 밥상을 준비한다.

“남들은 기술이 좋아 오랫동안 일하고 무사고 운전을 한다고 하는데 사실 기술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느긋하게 욕심내지 않고 작은 것에 고마움을 느끼며 다른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는 마음요. 그럼 무더위도 한결 견디기 쉬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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