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한국과 25년 인연, 정을 배웠어요”… 네팔인 앙도르지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8.11 09:41:35
  • 조회: 968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빌라 에베레스트(Villa Everest)’는 네팔 최초의 한국식당이다. 이 곳에 처음 오는 한국인들은 당연히 주인이 한국 사람일 거라고 짐작한다. 식당 안에 메주가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내오는 주인의 모습을 보면 짐작은 확신으로 변한다. 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외모에 한국말을 한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주인은 식탁을 돌아다니며 손님들과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주인의 이름이 이상하다. 이름이 ‘앙도르지’란다. 메주를 보고 놀랐던 한국인들은 주인의 이름을 듣고는 다시 한 번 놀란다. 앙도르지(Ang Do rjee·43)는 네팔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셰르파(sherpa)족 네팔인이다. 셰르파는 히말라야 등지에서 등반을 돕는 현지인 가이드를 지칭하는 단어로 알려져 있다.

앙도르지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곳은 산이 아니라 건설현장이었다. 1979년부터 83년까지 네팔에 거대한 수력발전소 공사가 있었다. 건설을 맡은 회사가 한국의 삼부토건이었다. 한국인 노동자만 500여명이 들어왔다. 당연히 식당도 따라왔다. 앙도르지는 건설현장의 한국식당에서 일했다. 요리사는 한국에서 온 아주머니이고 앙도르지는 보조였다. 4년동안 일하면서 한국 요리와 한국말을 배웠다.

공사가 끝나자 건설회사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앙도르지와 한국의 인연은 이어졌다. 에베레스트 등정을 온 양정고 OB팀의 오인환, 남선우씨가 도움을 청했다. 한국 요리와 말을 할 줄 아는 셰르파족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그 뒤로 앙도르지는 한국인 전문 가이드가 됐다. 베이스캠프에서 항상 든든하게 원정대를 지원했다. 네팔을 다녀간 한국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그를 기억했다. 히말라야 14좌를 오른 엄홍길, 박영석씨 등과도 친하게 지낸다.



89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88년 네팔을 다녀간 서울올림픽기념원정대에서 그를 초청해 보름 동안 관광을 시켜줬다. 앙도르지는 “그 때 처음으로 한국의 정이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90년에는 한국에서 학교에 다녔다. 89년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만난 이화여대 이근우 교수가 이화여대 한국어학당 입학을 주선했다. 앙도르지는 이교수의 집에서 6개월 동안 먹고 자며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익힐 수 있었다.

91년 본격적으로 한국관련 사업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먼저 카트만두에 있는 유일한 한국 식당 ‘빌라 에베레스트’를 인수했다. 원래 한국 산악인 정광식씨가 운영하던 곳이었다. 93년에는 가이드 일을 완전히 접고 무역업을 시작했다.

지난 6월22일 앙도르지는 한국을 6번째 방문했다. 한국 요리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카트만두에만 한국 식당이 12개로 불어나면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필요성을 느꼈다. 네팔에서 한국음식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은 할 만큼 해봤다. 네팔 최초로 콩나물을 키우기도 했고, 한국 참기름과 비슷한 맛을 내보려고 기름 짜는 기계를 수입해 가기도 했다. 해발 1,350m의 카트만두에서 한국 종자를 들여다 농사를 지어보기도 했다.



목적과 달리 한국에서 음식수업을 받은 날은 열흘이 채 못됐다. 앙도르지가 온다는 소식에 전국 산악인들이 모두 서울로 모였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다음날 저녁 모임에는 대한산악연맹 이인정 부회장과 김병준 전무 등 한국 산악계의 주요인사 20여명이 참석했다. 앙도르지는 “음식을 배우지는 못하고 먹기만 했다”며 “한국사람 정이 무섭긴 무섭다”고 웃었다.

그래도 소갈비, 돌솥, 닭불고기, 삼겹살 등의 요리를 배웠다. 앙도르지는 “소갈비는 힌두교도가 많아 불가능하겠지만 닭불고기는 즉시 써먹을 수 있겠다”며 “네팔에 오게 되면 꼭 먹으러 오라”고 당부를 잊지 않았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