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내맘대로, 자연그대로 신화짓듯” ‘생태건축’털보아저씨 김기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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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6.07 09:27:47
  • 조회: 522
세남자가 걸터앉아 막걸리를 한 사발씩 들이켠다. 집 짓다가 짬을 내 목을 축이는 중이다. 웬일인지 으레 있을 법한 벽돌과 시멘트가 보이지 않는다. 누런 황토를 짚과 섞어 으깨고 두드려 만든 흙덩어리만 있다. 이것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둥글게 벽을 올렸다. ‘아, 저렇게도 집을 짓는구나!’

경기도 가평의 용추계곡 물안골에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식의 집이 들어서고 있다. 자칭 ‘내 맘대로 짓는 집’이란다.

이끄는 사람은 털보 아저씨 김기헌씨(49·사진 가운데). 제대로 된 실험은 김씨도 이번이 처음이다. 혼자서 산비탈을 일구기에는 벅차다. 새로운 집짓기를 체험하러 온 한대명(36·왼쪽)·최문영(34)씨가 두 팔이 되어 작은 신화를 써내려 간다. 물안골에 온 지 한씨는 1년, 최씨는 5개월 됐다.

큰 밑그림은 그렸다. 대지 총 1,700평에 건물 10채 정도. 육각형 모양 한옥부터 황토 흙집, 전통 정자 등이 들어선다. 그러나 계획대로 술술 풀리지는 않는다. 바위를 옮겨 땅을 고르고, 길을 내야 하는 고단한 작업의 연속이다. 돌멩이 하나 옮기는 데 30~40분 씨름을 마다하지 않는다. 동그란 원형 집으로 계획했으나 찌그러진 타원형으로 바뀌었다. 땅을 다지다가 나온 바위를 애써 치우지 않은 때문이다. 또 산비탈 경사를 그대로 살린 덕분에 방 두 칸이 높낮이가 다르다. 억지로 평평하게 고르지 않는다. 그대로 떠안은 채 진행한다.

주변에서 ‘생태건축’이란 근사한 이름을 붙여준다. 생태는 곧 자연의 또 다른 이름 아닌가. “본래 생긴 대로가 아름답다”는 김씨는 “자연에 순응하는 건축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공정에서 화석연료 등이 많이 들어간 재료를 피한다. 시멘트보다 회를 고르는 게 당연하다. “시멘트는 열 충격을 줘 분자 순환고리가 끊어진 상태라서 나중에 쓰레기로 남습니다. 회는 돌가루처럼 부서지므로 재빨리 자연으로 돌아가죠.”

방수와 발수 기능이 좋아 자연 ‘고어텍스’라는 흙의 기능을 맹신하는 것은 금물이다. 자연 재료라고 모두 이로울 리 없다. 강산성의 황토는 알칼리성 회와 섞어 중화해야 안전하다. 생석회는 물과 반응시켜 열과 가스를 방출해야 믿을 수 있다. 종종 생태건축 정보에 목마른 사람이 혼자서 또는 20여명씩 길을 물어 찾아온다. 가끔 몇달씩 일하다 가는 여성도 있다.

“많은 이들이 건축 자체가 목적이냐고 묻습니다. 생태 재료를 써서 잘 짓는다고 완성되지 않아요. 생태적 삶은 과정이 중요합니다. 집 짓기로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삶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집은 좀더 크고 고정된 ‘옷’일 뿐이죠.”



김씨에게 집은 사람 사는 공간이다. 생태건축마저도 좀 더 살아보겠다는 절규에 불과하다고 본다. 지금 서울에 있는 부인도 앞으로 물안골에 들어와 살기로 했다. 현재 최문영씨 가족이 함께 산다. 건축 현장에서 내선전기 일을 했다는 최씨는 “한옥에 관심이 많아 5년 동안 집을 구경하러 다녔다”며 “언젠가는 내 손으로 직접 지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동국대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김씨는 75년 봄 반유신·반독재 투쟁에 나섰다가 제적됐다. 이후 역사·철학에 관심이 많아 서강대와 동국대를 다시 들어갔으나 번번이 학생운동 때문에 학교를 못 다녔다.

공부에 담을 쌓을 수밖에 없었던 김씨는 80년대 줄곧 산에 들어가 살 생각을 했다. 1년에 2~4개월씩 틈틈이 산에서 기거했다. 그때부터 30년 넘게 기(氣)를 수련했다. 사람이 그리워 산에서 내려온 뒤 인테리어·목수 일을 했다. 이 과정에서 못을 배제한 짜맞춤 결합구조 같은 전통건축 양식을 익혔다. 그 뒤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비롯, 녹색대학·생태산촌 만들기 모임·귀농운동본부 등 환경단체 활동을 통해 생태건축에 관심을 키웠다. 물안골에서 마땅한 터를 찾기까지 5년이 걸렸다. 2년전 작업을 시작해 내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앞으로 용추계곡 일대가 경기도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하면, 물안골은 생태교육장으로서 생태건축 전시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게 된다.

김씨는 “아직 성공이나 실패를 장담하기 이르다”면서도 “다양한 전통 건축기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작업 과정을 녹색연합의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한동안 연재했다.

현재는 인터넷 사이트(www.ngu.or.kr/cheers/ecovil)에 일기처럼 쓰고 있다. 물안골은 언제나 열린 곳이다. 생태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은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생태건축’엿보기



김기헌씨는 구태의연한 전통건축 재연을 싫어한다. 전통 양식을 나름대로 재해석해 응용하고 있다.

육각형 모양의 목조가옥 두 채는 벌집 모양을 따왔다. 자연상태에서 힘의 균형이 돋보이는 구조라는 것. 최소한 직사각형 구조는 벗어나고 싶었단다.

기본적으로 못을 쓰지 않는 전통기법에 바탕을 두면서도 현대적인 멋을 살리려 노력했다. 가장 바깥쪽에 6개 기둥을 세워 기둥과 기둥 사이에 흙을 쌓아 벽을 만든다. 각 기둥의 꼭대기와 육각형 중심을 대들보로 연결한다. 그 위에 지붕을 얹어 작은 돔과 같은 형태를 띤다.

지붕이 이중구조로 돼 있어 창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서양식 건축양식을 전통적인 기법으로 소화했다. 방수에 부담이 있지만 기와는 되도록 피하고 나무로 만든 너와나 흙을 덮어 지붕을 만들 요량이다. 그 위에다 화초를 키울 생각까지 한다.

명상공간으로 쓸 둥근 흙집 두 채는 영국식 콥(cob) 흙 건축법을 차용했다. 춥고 다습한 영국 날씨에도 500년을 버틴 방식이다. 긴 짚을 그대로 흙과 섞어 직접 벽을 만든다. 덕분에 자유로운 모양을 낼 수 있다. 여기에 전통의 목조 구조물과 온돌을 가미했다. 벌집의 밀랍을 녹여 얇게 발라 흙벽을 마감질할 계획이다.

주위에는 우리 식의 사각형 정자를 세운다. 또 달팽이 모양의 식당도 만들 예정이다. 거주 공간에 주방을 만들지 않아 오폐수 발생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집터 왼쪽 계곡에는 폐수 정화용 연못을 꾸몄다. 미생물 처리 기능을 갖춘 정화조가 1차로 오폐수를 걸러준다. 여기서 흘러나온 물은 다시 연못의 갈대나 옥잠화 등을 거치면서 자연정화된다.

가능한 한 화석연료 사용을 자제하기 위해 김씨는 보일러를 자체 제작했다. 일명 ‘거꾸로 타는 보일러’인데 주위에 허다한 잣 껍질·나무 따위를 태워 방을 데운다. 여기서 나온 재는 산에 돌려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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