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혼혈인, 늘 놀림 당해서 ‘싸움 짱’돼야 했죠.SBS농구단 김동광감독-가수 소냐 솔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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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5.20 09:37:17
  • 조회: 4640
한국에서 혼혈로 살아온 삶은 어떤 것일까. 사회적 편견을 적지 않게 갖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누구보다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고 또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갈고 닦았을 것이다.

혼혈 연예인들의 활동이 활발한 요즘, 혼혈에 대한 사회 인식 변화는 어느 정도인지 또 이런 변화를 보며 혼혈로서 느끼는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대담을 나눠봤다. SBS농구단 김동광 감독과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소냐가 자리를 함께 했다.



#혼혈 연예인들의 높은 인기

김감독=그렇다고들은 하는데 직접적으로 잘 알진 못해.

소냐=저도 연예인쪽 혼혈들 하고 많이 알진 못해요. 어렸을 때부터 펄벅재단에 다녀서 일반 혼혈분들은 알지만 연예인들은 아직 재단에 많지 않거든요.

김감독=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재단에 한두번 갔어. 최근엔 2년 전인가 재단 요청으로 가서 사인해주고 그랬지.

소냐=제가 어렸을 때는 인순이, 윤수일 선배님이 오셔서 좋은 얘기 많이 해주셨어요. 저는 말은 잘 못하니까 가서 놀아주는 게 전부죠.



#혼혈에 대한 인식 변화

김감독=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엔 어딜 나가면 굉장히 티가 났거든. 지금은 워낙 머리 염색 많이 하고 선탠도 일부러 하니까 혼혈이란 개념도 많이 없어진 것 같아. 외국인도 많이 접하니까 자연스러워진 거지.

소냐=제가 겪은 건 감독님보단 덜했겠지만 그래도 맘 고생을 많이 했어요. 도시에 있는 미군부대 앞에서 살 땐 잘 몰랐는데 초등학교 때 할머니 댁이 있는 김천 시골로 간 다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시골 사람들은 외국 사람을 잘 못봤으니까 더 심했죠.

김감독=우리 때도 놀림을 많이 당했어. 초등학교 때는 내가 싸움 짱이어서 놀리는 애들은 다 혼내줬지. 중학교 가서는 농구부 선배들이 있으니까 놀리진 않더라고.

소냐=저도 초등학교 때부터 육상을 했는데 중학교 들어가서는 선배 언니들하고도 싸워서 이겼어요. 싸워서 이기니까 덜 놀렸죠. 처음 데뷔했을 때는 다른 연예인과 친해지는 걸 싫어했어요. 근데 ‘혼혈 아니냐’고 물어보는 걸로 모든 사람과의 대화가 시작되니까 더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편하게 대해야 상대방도 나를 편하게 느끼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먼저 혼혈임을 말하고 다녔어요. 이제는 펄벅재단 친구들한테도 그렇게 말해요. 친구들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친구들이 다가오게끔 너희들이 다가가라고요.

김감독=어릴 때부터 외모에서 워낙 티가 났었으니까 숨길 수도 없었고 또 운동하면서부터는 얼굴이 다 알려졌으니까 어디 가도 떳떳하게 얘기해.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잖아. 혼혈끼리는 보면 다 알거든.



#혼혈에 대해 바뀌어야 할 사회인식 & 혼혈들이 노력해야 할 점

김감독=혼혈들이 운동이나 예능분야를 했으면 좋겠어. 금세 출세할 수 있는 분야거든. 신체조건이 나으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소냐=저는 사회에서 혼혈들이 어느 정도 불이익을 받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김감독=좋은 얘기야. 나도 대학교 졸업할 때 잠깐 몇개월 심적 고통이 있은 이후로 탄탄대로여서 불이익을 실감하지 못해. 하지만 여전히 취직 못하는 친구들이 많을 거야. 사회가 혼혈들을 포용해주는 정책은 아직 없다고 봐.

소냐=혼혈들이 끼가 많아요. 두가지 끼를 타고나니까요. 혼혈 친구들끼리 여행가면 다들 끼를 주체하지 못해 난리죠. 우리끼리 뭉쳐 있을 때는 활발하고 말 잘하는데 각자 생활로 들어가면 외부 시선으로 위축돼요. 스스로 이걸 빨리 깨고 자신이 어디에 자질이 있는지 파악해서 나아가야지 안그러면 평생 고민만 하게 될 거예요. 도전해 보는 거랑 생각만 하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김감독=중학교때 농구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는데, 농구를 하면서 사실 어려움도 많았지. 엄마랑 단둘이 살면서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아 선생님들한테 인사도 잘 못드리고 그랬어. 부모님이 인사 잘하면 선생님들이 한번 더 봐주고 그런게 있잖아. 그래도 눈치는 있으니까 옆 친구한테 얘기하는거 얻어 듣고 따라하고, 같이 훈련할 때 더 열심히 하니까 다른 친구들보다 내가 더 잘했어.



#어머니에 대한 기억

소냐=엄마는 유방암으로 고생하시다가 약 한번 못써보고 돌아가셨어요. 그후 할머니 손에 커서 할머니께 더 애틋해요.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 할머니한테 다 풀었거든요. 반면 할아버지한테는 많이 맞았어요. 지금은 할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노력중이에요.

김감독=할아버지는 완고한 세대니까. 우리 어머니도 나를 엄하게 키웠어. 맞고 들어오면 엄마한테 혼났어. 내가 때리고 들어오면 다친 거 물어주고 오히려 용돈 주셨지. 강하게 키우려고 부단히 노력하셨던 것 같아. 그게 나한테는 생활력을 만들어줬지만 당신한테는 손해였어. 엄마가 어려워서 내가 잔정을 드리지 못했으니까.

소냐=고등학교 때 산업체에서 일했는데 실따는 기계소리가 무척 컸어요. 8시간 동안 계속 서서 실 이으면서 노래만 했어요. 기계소리 때문에 노래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들리니까요. 3년 동안 공장에서 일하면서 이 노래 저 노래 다 불러봐서 목 훈련시키는 데 좋았어요. 요즘 신인가수들 보면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들이 악기 연주 등 다 훈련시켜 주던데 그런게 너무 부러워요.

김감독=소냐는 지금까지 고생 많이 해왔지만 톱이 되기 위해서는 계속 더 노력해야 돼. 그래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행동할 때 한번 더 생각하고. 소냐, 파이팅!

소냐=오늘 감독님한테 좋은 말씀 많이 들은 것 가슴속에 항상 새기고 있을게요. 감독님 해나가시는 것 보면서 저도 목표 세워 하나하나 이루면서 살게요.



◇김동광(53)

현재 프로농구 안양SBS스타즈 감독. 1964년 송도중 1학년때 농구 시작했다. 국가대표(73~81년)와 기업은행 선수(74~83년)로 활약했으며, 1970년대 ‘한국 최고의 가드’로 불리며 스타선수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이후 바레인 대표팀·기업은행·SBS·삼성 등의 감독을 맡았다.

김감독은 한국전쟁 때 공군으로 참전한 미국인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출명령을 받고 간 일본에서 김감독의 출생소식을 알았으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간간히 연락만하다가 1983년에 직접 만나게 됐다.



◇소냐(24)

가수 겸 뮤지컬 배우. 1999년 1집 ‘너의 향기’로 데뷔했으며 현재 5집 앨범을 준비 중이다. 뮤지컬 ‘페임’ ‘렌트’ 등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 ‘4월의 키스’의 주제곡 ‘추억이 오는 날’을 부르기도 했다.

소냐는 주한미군으로 와있던 흑인과 스페인계 혼혈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았다. 아버지는 출생 직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11살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이후 20여년간 소식조차 모르고 지냈다가 지난해 방송사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아버지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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