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언 해피맨’나행복 부장의 행복찾기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3.25 09:44:32
  • 조회: 452
저녁 7시. 기분을 좋게 만드는 각성제 ‘해피정’이 주력상품인 해피제약회사 영업부 나행복 부장은 손목시계를 흘끗 쳐다봤다. ‘술이나 한잔 해야겠군.’ 나부장은 부하직원들 중 끌고갈 놈들을 찾아 휙 둘러본다. 눈빛을 보내보지만 다들 마뜩지 않은 눈치다. 승진에서 두번 탈락한 이후로는 말발이 서지 않는다.

“부장님, 전 오늘 일찍 들어갔으면 합니다. 우리집 해피가 새끼를 낳았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거든요.”

“행복? 짜식. 남사스럽게 행복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다니.”

사실 나부장도 좋아서 이러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는데 부장을 단 이후로는 좀처럼 길이 보이지 않았다. 계속되는 승진 탈락으로 인해 무기력해지고 불안한 마음에 저녁에 술 한잔 걸치지 않으면 허전해지곤 했다. 나부장이 잠깐 딴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직원들은 하나둘 슬쩍 자리를 빠져나갔다.

‘행복이라, 도대체 행복이 있기나 한거야. 그래 나가서 행복이나 찾아보자. 머리카락 빠지고 배 나오도록 일했는데 행복할 권리가 있지. 명색에 이름도 행복인데.’



나부장은 정말 이 허전함을 행복으로 메우고 싶었다. 그는 회사를 나와 근처 서점으로 갔다. 에세이 코너에는 ‘일과 가정 속에서 행복한 나를 만나고 싶다’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나의 바람과 똑같군. 다들 나랑 비슷한가봐.’ 나부장은 책을 훑어봤다. 세계적인 슈퍼모델이 쓴 ‘행복한 사람으로 사는 법’이란 책이 눈에 띈다.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도 있다. 서점 진열대엔 행복이 넘쳐나고 있었다. ‘행복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시골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람도 많네. 나도 그렇게 살면 행복할까?’

스스로 던진 질문이지만 왠지 안 어울리는 개량한복을 입은 것같이 어색하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행복해지는 비법들을 요약해 놓은 책들이 꽤 많았다. ‘날마다 조금씩 더 행복해지는 법 35가지’ ‘행복한 사람들의 88가지 공통점’ ‘행복한 사람으로 사는 법’ 등. 또 행복을 예찬한 잡지들도 수십종이나 됐다. 그는 눈에 드는 책 몇 권을 샀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 밖으로 바라보니 건물에 붙어 있는 대형 전광판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힘드시죠. 해피신용사가 여러분께 행복을 찾아드립니다’라는 광고문구가 반복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뒤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식탁에 앉아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켰다. 그때 화면에서 한 전자회사의 광고가 나왔다. 기차 안에서 아빠·엄마·딸·아들이 ‘하하’ ‘호호’ 웃으며 음식을 먹고 캠코더로 서로의 모습을 찍으며 노는 애니메이션이었다. 화면 속의 가족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저 캠코더를 사서 놀러가면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을까’하고 나부장은 생각해 보았다.



식사를 마친 그는 사온 책을 펼쳤다. 행복해지는 방법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순박한 삶에서 기쁨을 느껴라. 감성에 자신을 내맡겨라…아침 또는 저녁에 적어도 10분간 자기 성찰 시간을 가져라. 뜨거운 물로 오랫동안 목욕을 해라…더욱 강해지는 비결은 많이 실패해 보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가.’

읽어보니 그럴싸하다. ‘이번엔 꼭 승진해야 하는데 감성에 나를 맡기라고?’

착잡해지는 마음과 졸음이 한데 엉겨 나부장의 눈꺼풀은 무거워졌다. “내일 큰 애 생일이야.” 잠결에 아내의 목소리가 그의 귓속으로 희미하게 들어왔다.

다음날. 출근한 나부장은 하던 대로 이메일을 먼저 열었다. 반은 스팸메일, 반은 업무메일인 가운데 하나가 눈에 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행복과 기쁨’. 오늘은 마침 행복에 관한 이야기다. ‘행복은 고통을 이겨내는 자에게 더욱 값진 것이다.’ 자신을 찍어서 하는 말 같다고 나부장은 생각했다. ‘이번엔 승진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보자.’

이어 조간신문을 넘겨본다. 대한민국이 행복하게 바뀌고 있다는 한 이동통신회사의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펼쳐졌다. ‘운동이 생활이다. 퇴근길 걷기, 층계 오르기, 점심시간 농구타임 등 어디서나 즐겁게!’ 신문 광고 속의 많은 사람들은 운동을 하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부러운 듯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딸기 향기가 흘러왔다. 쳐다보니 여직원이 딸기향 립글로스를 바르고 있다. “단순히 바르는 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 향기가 나서 기분을 좋게 해줘요. 웰빙 제품이에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물건을 갖고 다니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 산 책에 작은 화분을 책상에 갖다놓으면 행복해진다고 써 있었다. 점심시간에 나가 작은 화분을 하나 사서 책상에 놓았다. 푸른 빛깔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그가 막 ‘행복해’라고 말하려는 순간 상무의 호출이 왔다. 이번달도 목표실적에 못미칠 것 같다며 치도곤이다. 자리로 돌아와 책상 위의 화분을 보니 화가 났다. 태평하게 화분이나 키우고 있으면 곧 자리가 없어질 판 아닌가. 나부장은 화분을 창문 앞으로 슬쩍 옮겨 놓았다.

퇴근길, 큰 아이 생일파티를 위해 케이크를 샀다. TV 광고 속의 가족처럼 행복해지고 싶었다.

“자, 동생이 누나를 위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봐라.” 중학생이 된 이후 묻는 말에 대답도 잘 안하는 아들 녀석은 억지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니 분위기가 어색하다. 다들 ‘웬일이야’하는 표정이다.

안방으로 들어와 어젯밤 보다만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행복해지는 법에 관한 책들로 행복해질 수 있는 거야?’ 문득 어린 시절 읽은 메테를링크의 ‘파랑새’가 생각났다. ‘행복은 주변에 있다. 나는 그것을 잡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나부장은 행복을 외치면 외칠수록 자꾸만 초라해지는 비루한 삶에 멀미가 났다. ‘그래 잠이나 자 둬야지. 난 사오정이 되기 싫어. 직장에서 안잘리고 버티는 게 행복일는지 몰라.’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