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통신] 구속이 싫어서 … 건강에 안좋아 … 휴대폰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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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3.19 09:25:16
  • 조회: 701
“삶의 속도 너무 빨라지면 뭐 좋나요”

우리나라 휴대폰 이용자 수는 지난 1월 말 기준 3042만5291명. 2001년에 조사한 총인구가 4767만6000명이니 어지간한
성인은 휴대폰을 다 가지고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 벨 소리를 울린 지 17년 만에 휴대폰은 그렇게 개인과 세상을 잇는 통신수단으로서 ‘절대 권좌’에 올랐다. 그러나 아직
1700만명은 휴대폰이 없다. 이 중엔 일부러 휴대폰을 거부하는 이들도 적잖다.

어렵사리 휴대폰 없는 이들을 찾았지만 그들과 통화하는 것은 그들을 찾기보다 더 어려웠다. 그들의 빈 집, 사무실에 전화를 걸고
자동응답기에 메시지를 남기는 심정은 복권당첨을 기다리는 것처럼 막막했다.

직업특성상 상황에 따라 휴대폰을 비닐봉투에 담아 목욕탕에 들고 가기도 하는 기자로서는 답답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1. 휴대폰이 우리를 망친다.



취재 결과 휴대폰를 안 쓰는 이들이 많은 직업군은 ① 문인 ② 교수 ③ 생태·환경운동가로 나타났다. “왜 휴대폰을 안 쓰느냐”는
물음에 생태운동을 하는 고병헌 성공회대 교수는 처음엔 “별 이유 없다”고 답했으나, 이내 진지하게 휴대폰의 폐해를 역설했다.

“일단 몸에 안 좋습니다. 휴대폰을 갖고 다닌다는 건 늘 강한 고주파를 몸으로 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위험이 과학적으로 검증
안 됐다’는 게 휴대폰업계 주장인데 말이 안 됩니다. 그런 논리라면 담배의 해악성 역시 ‘해로울 수 있다’까지만 검증된 상태입니다.”
그는 또 “우리 사회의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여유와 다양성을 해치는 주범 역시 휴대폰”이라고 지적했다.

“저랑 통화하는 사람들 말 시작이 보통 이렇습니다. “너∼무 힘듭니다.” 몇 번 전화하고 그러는데 여러 번 듣다 보면 저도 화가
납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전화응답기도 마련해 꼬박꼬박 연락하는데 왜 그렇게 제게 부담을 주는지 모르겠어요.”

실제 고 교수는 오후 4시쯤 남긴 메시지를 밤 9시에 확인하고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 경우는 동선(動線)이 뚜렷합니다.
집 아니면 연구실, 그렇지 않으면 예의상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식사 중이라든지 남과 얘기 중인데, 그 순간에 집중하고
상대방을 존중해야지 ‘미안하다’ 어쩌고 하면서 전화받느라 상대방과 대화를 단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삶이 과속하게 된 것도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하게 하고 참을성을 없애버리는 휴대폰 탓이라는 게 그의 생각. “휴대폰 없는
사람에 대해 불평하는 건 삶의 속도, 의사소통의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른 쪽에도 영향을 줘 항상 즉각적인 반응과
결과를 원하는 습관이 되고, 사고의 틀도 그런 쪽으로 만들게 됩니다.”


2. 휴대폰, 영혼과 자유의 구속



휴대폰 없이 사는 문인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대개 “귀찮아서”라고 대답했다. “무엇이 귀찮으냐”는 물음에 “이렇게 잘 모르는
이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일”이라고 실감나게 답하는 소설가도 있었다.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으로 유명한 작가 조정래씨도 휴대폰을 일부러 소유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출 중일 때 그와
통화하려면 부인 김초혜(시인)씨의 휴대폰을 통해야 한다. 그것도 동반외출일 때만 가능하다. 폭설이 쏟아진 지난 4일 역시 부인의
휴대폰을 통해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글쓰는 사람이 그게 왜 필요합니까. 그걸 갖고 있는 건 자유의 구속일 뿐입니다.”

내친김에 그는 작금의 휴대폰 문화에 대해 한바탕 ‘쓴소리’를 쏟아냈다. “휴대폰이란 게 바쁜 일 하는 사람, 꼭 필요한 사람들
쓰라고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이지, 수다나 떨라고 만든 게 아니잖습니까.”

그의 쓴소리는 ‘휴대폰 무용론’으로 이어졌다. “그런 휴대폰을 초등학생들까지 갖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꼭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수다 떨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어요.” 혹 언젠가 그도 휴대폰이 필요해지지 않을까. “그럴 돈 있으면 좋은 일 하는
시민단체에 기부하겠습니다.”

시인 황인숙씨도 휴대폰 무용론자다. “귀찮아서 안 씁니다. 휴대폰이 없어 불편한 게 아니라, 요즘 공중전화가 줄어들고 있어서
불편하긴 합니다.” 그는 “빈민촌 체험기를 담은 ‘거세된 희망’이란 책을 보니 아주 어렵게 사는 빈민들도 휴대폰이 있는데, 그게
있어야 일거리가 생기면 언제라도 불려갈 수 있기 때문이더라”고 했다. 24시간 휴대폰을 옆에 놓고 살아야 안심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휴대폰이 없는 저를 어떤 사람들은 약간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아요. 또 성미 급한 친구들은 ‘네가 뭔데 안 갖고 다니느냐’며
짜증내기도 하고…. 그것도 어디 구속될 필요 없는 문인의 특권이고 권력이라면, 앞으로도 그 정도의 권력은 즐기려고 합니다.”

성공회대 신영복 김진업 박경태 박창길 조효제 교수도 휴대폰을 쓰지 않는다.

박 교수는 휴대폰을 쓰지 않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에 대한 개인적 저항의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너무 빠르게 변하고, 항상
새로운 게 당연시되는 세태에 대한 저항이라는 설명이다.


3. 휴대폰, 선택적 소비



소설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복거일씨도 휴대폰을 안 쓴다. 친구가 한 달 전 ‘카메라폰’을 선물했으나 쓸 일이 없어 안 쓴단다. “모든
소비는 들어가는 비용과 편의를 합리적으로 따져야 합니다. 편리하긴 하지만 몇십만원씩 투자할 필요가 있느냐에 대해선 부정적이란
거죠.” 그는 “작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연락해오는 것도 싫고, 카메라폰이라고 해 열심히 설명서도 보고 공부했지만 찍을 것도
없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휴대폰과 기술문명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기술은 판단해 골라 쓰면 되는 겁니다.
모든 기술에는 부작용이 따르는데,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사람의 심성에 있습니다. 무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무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전쟁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요.”

‘휴대폰 소유’로 돌아선 이도 있었다. 소설가 윤흥길씨는 몇 달 전부터 유학 떠난 딸의 휴대폰을 갖고 다닌다. “굳이 살 필요를
못 느꼈는데, 남는 휴대폰이 생겨 갖고 다닙니다. 뭐, 그래도 가까운 친지들만 어쩌다 한 번씩 걸어오는 정도입니다.”

시인 최영미씨도 최근 휴대폰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역시 식구들만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제한적 사용이다. “휴대폰이 싫은
건 변함없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깨는 물건이에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왕성한 집필활동에도 연구활동에
전념하려고 외부와의 소통을 오로지 팩스와 이메일로만 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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