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세상 근심 덜어내는 뒷간·잿간·측간… 화장실 어떻게 변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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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3.13 09:29:31
  • 조회: 809
인간은 음식물을 먹어야 산다. 몸에서 똥과 오줌을 빼내는 배설은 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생리과정이다. 이러한 배설행위의 공간인 화장실은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다. 예전의 화장실은 ‘볼일보는 곳’ 이상의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풍요와 더불어 쾌적한 문화생활을 향유하려는 욕구가 화장실을 또하나의 문화공간, 생활공간으로 격상시켰다.



▲화장실의 변천

태초의 화장실은 자연이었다. 산·들·강가에서 자유롭게 배설했다. 그러다 정착생활이 이뤄지면서 배설도 일정한 장소에서 행해져야 했다. 옛날, 화장실에 뒷간, 잿간, 측간, 해우소 등의 이름이 붙여졌다. 뒷간은 ‘똥을 눈다’는 뜻의 우리말인 ‘뒤를 본다’에서 나왔는데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널리 사용됐던 표현이다. 지역에 따라 정낭, 통숫간 등의 말도 통용됐다. 잿간은 잿간 한 모퉁이에 돌멩이 2개를 얹어 놓고 ‘일’을 본 다음, 재와 함께 잿더미 속으로 던져 넣었다.

절에서는 뒷간을 해우소라 불렀다. 불가피한 생리현상을 해결함과 동시에 세상의 근심까지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이동식 변기’인 요강은 신부들의 필수 혼수용품으로 남녀가 따로 사용했다. 재질로 그 집안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뒷간과 처가는 멀리 있을수록 좋다’는 우리 속담에서 보듯, 문명이 발달해도 여전히 화장실은 쉬 얘기를 꺼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뇨는 먹거리 생산을 위한 자원으로 재사용했다. 뒷간에 모인 인분을 재와 섞어 밭에 거름으로 뿌리고, 그 밭에서 자라난 싱싱한 풀들을 다시 섭취했다.

일제시대에는 변소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30대 이상만 해도 학창시절에 벌로 ‘변소청소’를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지금의 화장실이라는 명칭은 1980년대에 들어서야 통일된 것이다. 7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확산된 아파트는 화장실 문화 변화에 큰 획을 그었다. 화장실이 집 밖에서 집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문화공간으로 변모

경제적 풍요로움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문화생활 욕구를 자극했다. 매일 수차례 들르는 화장실도 이러한 욕구해소 대상의 하나가 됐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 남성은 하루에 5.5회, 여성은 7.2회 화장실에 간다고 한다) 점점 깨끗하고 쾌적한 곳으로 바뀌어갔다. 더이상 부끄러워 드러내놓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곳도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화장실 변기에 앉아 신문을 보고 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긴다. 화려한 인테리어로 치장된 화장실은 카페를 연상시킬 정도다. 음악도 흘러나온다. 화장실 그 자체가 여타의 문화를 측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다.

화장실은 주위의 모든 간섭, 시선, 소음으로부터 잠시나마 일탈, 자신을 되돌아보는 제3의 공간이기도 하다. 또 그저 급한 용무만 보고 떠나는 곳이 아니라 손을 씻고 거울을 보며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꾸미는 말 그대로 ‘화장실’인 것이다. 최근에는 자연환경과 조화되는 특색있는 화장실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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