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이땅의 풀들 다, 이루었다 국내최대 ‘잡초’도감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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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3.11 09:39:41
  • 조회: 734
김동성·박수현·故 양환승 옹




이렇게 에둘러 가는 길인 줄 몰랐다. 뜻을 품은 30대 청년은 70대 노인이 됐다. 성큼성큼 전국을 누비던 그 청년은 이제 아이의 발걸음으로 되돌아와 주춤주춤 걷는다.

김동성 할아버지(73)는 지난 1월 서울 갈현동 집에서 몸져누워 있는 아내(조혜현·71) 앞에 두꺼운 책 한 질을 내려놓았다. 각각 1,000쪽이 넘는 두꺼운 책 3권. 책등쪽 3명의 저자란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김씨는 36년 만에 이 책을 완성했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전했다. 자리보전을 하고 누운 지 12년째인 아내는 그러나 알아들은 기색이 없다. 고혈압으로 쓰러진 아내는 요즘 들어서 치매기마저 보이고 있다. 쪼글쪼글 주름이 잡힌 아내의 손을 잡고 재차 말을 건네니 기뻐하는 것도 같다.

“아들 하나, 딸 셋 키우느라 고생했소. 애들 대학 보내느라 걱정하고 고민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이제 애들이 손주들 대학보낼 걱정을 하고 있다오.”

김씨는 아내에게 하는 말인 듯, 혼잣말인 듯 그렇게 손을 잡고 한동안 말을 이어갔다. 어느 사이 눈물이 떨어져 아내의 팬 볼에 잠시 고였다가 베갯머리로 떨어졌?

김씨는 젊은이도 휘청거릴 정도로 무거운 ‘잡초’란 책의 저자다. 공저자 3인의 한 사람이지만 뜻을 세우고 평생 흔들림 없이 이 일을 추진하면서 중심역을 수행했다.



다른 공저자 중의 한 사람인 박수현 할아버지(68)는 1993년 김씨의 국내 최대 잡초도감 발간작업에 가세했다. 두 사람은 하찮기만 한 잡초의 모든 것을 평생에 걸쳐 추적했다. 혈기왕성한 20대에 풀과 인연을 맺어, 이제 70고개를 넘거나 다다랐다. 지난 1월 ‘잡초’(이전농업자원도서 간) 발간은 그렇게 이어온 두 사람의 50년 풀 사랑의 총결산이다.

‘잡초’의 마지막 공저자인 양환승 전 전북대 농대 교수는 한국 잡초학계의 최고 권위자. 68년 박씨가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가면서 처음 인사를 나눴다. ‘잡초’를 탈고하기까지 학문적으로 자문한 양교수는 지난해 10월 책이 나오는 걸 보지 못하고 78살의 나이로 작고했다.



세 사람이 함께 펴낸 책에는 모두 794종류의 잡초가 망라돼 있다. ‘잡초’는 분량이 3,000쪽이 넘으며 2,750여장의 컬러 사진이 실려 있다. 쇠비름, 쐐기풀, 마디풀, 쇠비름, 괭이밥, 쥐손이풀, 부처꽃, 개미탑, 질경이, 고비, 자라풀 등등. 어떤 풀은 모양이 보잘 것 없는 대신 꽃이 예쁘고, 어떤 풀은 가냘프게 생겼어도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

누가 가꾸지 않아도 저마다의 형태와 생리와, 생태대로 이 땅 어느곳에나 뿌리내린 것들. 이 책은 한 마디로 국내에서 자생하는 토종·외래종 잡초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정부나 학계에서 해야 할 일을 개인들이 수십년의 시간과 노고와 사재를 들여서 해냈다.

다국적 제초제 회사인 몬산토코리아 사장을 지낸 김씨가 잡초도감을 내기로 결심한 때는 1968년. ‘잡초’의 구상에서 발간까지 정확하게 36년이 걸린 셈이다.



그해 창설요원으로 몬산토코리아에 입사한 김씨는 첫 임무로 ‘제초제 현지 실용성 평가’ 작업을 맡았다. 몬산토가 만든 제초제가 국내 잡초에 얼마나 효능을 발휘하는가를 검증해야 하는 일이었다. 농고출신에다 전북도립임업시험장·전북농사원 등에 근무해 농업분야 전문가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어렵기만한 과제였다.

하고 많은 잡초 중에 어떤 종이 구제 대상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도무지 아는 것이 없었다. 변변한 식물도감 하나 없던 시절. 잡초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가 돼 있을 리 만무했다.



김씨는 이 나라 잡초를 총망라한 도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현실적인 필요성도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잡초를 제대로 아는 것이야말로 이땅의 자연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풀 한 포기씩 채집하고, 분류하고, 생태를 관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이땅의 민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음에도 천대받고 무시당하는 잡초에 대한 애정은 세월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김씨는 혼자 시작한 몬산토코리아를 직원 600여명의 회사로 키우고 92년 정년퇴직했다. 그에게는 20여년 동안 주말마다 찍은 잡초 사진 1만장 가량이 모아져 있었다. 그는 “3년이면 도감작업을 끝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업은 예상보다 10년정도 더 걸렸다.

아내는 공교롭게도 몬산토코리아를 정년퇴직한 다음날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주중에는 아내를 간병하면서 연구를 했고, 주말이면 간병인에게 맡기고 박씨와 함께 산과 들을 찾았다. 오십견이 심해져 카메라를 들기 힘들 정도가 됐어도 안간힘을 써가며 셔터를 눌렀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쇠한 다음에야 현장작업을 그만뒀다.

‘현장 박수현, 집필·연구 김동성’으로 역할을 나눈지 몇년이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어려움에 처했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日暮途遠) 심정이었을까. 김씨는 지나치게 눈을 혹사해 실명할 위기를 맞았다. 최근 몇년간 녹내장 수술을 비롯해 모두 3번의 눈수술을 받았지만 집필의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박씨와 김씨는 60살 넘어 만났지만 둘도 없는 평생의 친구다. 박씨는 서울 인창고에서 33년 동안 생물교사로 교편을 잡았고, 정년퇴직한 후 국립수목원 초빙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박씨는 두 사람이 잡초로 의기투합하기 전에도 주말마다 전국을 떠돌며 식물 표본을 채취한 ‘식물마니아’였다. 99년 퇴직 때는 경기대에 식물표본 1만5천점을 기증했으며, 외래종 식물을 다룬 귀화식물도감을 펴내기도 했다.

하라고 강요한 사람도 없었고 꼭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지만 두 노인은 잡초처럼 끈질기게 잡초를 붙들고 40년 세월을 살았다. 두 사람에게 잡초는 더이상 ‘잡스런 풀’이 아니다.

지상의 어느 식물보다 귀하고 아름다운 풀. 우리땅의 피붙이이자 살붙이인 풀. 김씨는 후기에 이렇게 썼다. “여명이 닿는 한 이 잡초도감의 보완에 힘쓰고 아내의 간병이나 하다가… 이 책과 함께 유성에 갈 날을 조용히 기다릴 뿐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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