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나는 빙하기에 빙수 먹는게 싫어요” 희귀성 빙씨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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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2.25 10:59:00
  • 조회: 2461
희귀 성을 가진 사람은 살면서 적잖이 애를 먹는다. 의사소통이 될 나이가 되면 이런 저런 별명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이제 겨우 고달픈 인생의 첫 발을 내디딘 셈이다.

경주 빙씨 성을 쓰는 지영씨(22·여)도 어릴 때 항상 놀림감이 됐다. 빙과류 이름은 늘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영어시간에 ‘being’이 들어가는 문장도 으레 지영씨 차지였다. 수업시간에 ‘빙하기·간빙기’ 같은 용어만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발개졌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때 서울로 전학오기 전까지 전남 곡성군 고향마을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마을에 빙씨가 제법 되는 데다 학교에도 4명이나 다녔다. 동갑내기 남학생에게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곤란함은 있었다. 하지만 빙씨로서는 당당했다. 이렇게 드문 성인지도 몰랐다. 특히 곡성읍 대평리 고향마을에서는 빙씨네가 15가구로 최대 가문을 이룬다. 김·이·박씨도 5~10가구뿐이란다. 최소한 마을 어귀까지는 최대 성씨로 목에 힘을 줄 만하다.

지영씨는 지난 8일 서울 신촌의 한 백화점 경품행사에서도 희귀 성씨만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을 했다. 당첨자 명단이라며 직원이 처음에 “빙…지영씨”라고 불렀다. 이내 이상했던지 “빙?”이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곧 “방지영씨!”라고 고쳐 호명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방씨 성을 가진 지영이란 이름의 여성이 자신이라며 나섰다. 결국 주민등록 뒷자리 번호까지 대고서야 작은 상품 하나를 건질 수 있었다.

빙씨는 이처럼 방씨로 자주 오해받는다. 공군장교 시절 전역신고를 하던 원철씨(29). 전역증을 건네기 전 인사차장(소령)이 과장(대위)에게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허, 이 녀석 또 오타 냈네.” 당연히 방씨로 여긴 것이다.

우편물에 방씨로 찍혀오는 것은 너무 흔해 이미 포기했다. 고교시절 기완씨(27)도 ‘방기완’으로 된 명찰을 받아야 했다. 명찰을 단체주문받은 업체에서 ‘오자’를 친절히 수정한 것이다. 기완씨는 오른쪽에 튀어나온 점 하나를 손수 지워야 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전화로 예약하면 발음 때문에 종종 김씨로도 착각한다. 화교가 아니냐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학교에서 대리출석이 어렵다는 점도 빙씨 같은 희귀 성씨 나름의 어려움이다. 개강 첫날 교수가 이름과 얼굴을 확실히 익히기 때문이다. 한때 기완씨는 아예 쪽지를 들고 다녔다.

“꼭 누군가 성에 대해 물어보는데, 시조는 누구이며, 중국에서 왔다는둥 장황하게 늘어놓기가 어려워서요. 그냥 빙가 내력을 복사한 종이를 내밀었죠.”

드문 성씨 덕도 본다. 지영씨가 모 기업 면접장에서 겪은 일. 프로필 등에 대한 질문은 거의 없었다. 줄곧 “어디 성씨냐” “몇 명이나 되고, 가족은 어떻냐”는 물음이 이어졌다. “이름 덕분에 합격했나 봐요. 한번 들으면 안 까먹으니까, 분명 장점도 있는 것 같아요.”

또한, 저절로 사교성이 좋아진다. 가만히 있어도 남들이 성씨에 대해 물어온다. 유래를 설명해주면서 친해지게 된다고 한다. 원철씨는 “조금만 실수해도 기억을 잘 해 언행도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원철씨는 인터넷 다음카페(cafe.daum.net/bing7)를 통해 빙씨를 알리고 있다.

원철·기완·지영씨는 이구동성으로 한마디 했다. “집안 어른들께서 농담삼아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결혼하면 아들은 꼭 셋 이상 낳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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