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 누런 월급봉투 “쥐꼬리라도 돈 세는 순간은 행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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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2.20 14:58:02
  • 조회: 501
‘실장님은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사람입니다. 한달동안 고생 많으셨고 앞으로 더 좋은 관계로 회사를 같이 이끌어 갑시다….’

광주 북구에 사는 진형순씨(35)는 매달 남편 박재산씨(43)로부터 월급봉투를 건네받을 때마다 작은 설렘을 갖는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의 편지가 들어있을까 기대되기 때문이다. 남편 박씨가 일하는 공작기계제조업체 이화하이테크는 사장이 직접 직원들에게 월급봉투를 나눠준다. 이곳에서 한솥밥을 먹는 식구는 15명 정도. 작은 회사라 경리는 사장의 아내 이경련씨가 맡고 있다. 8년 전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월급봉투 속에 ‘깜짝 편지’를 끼워넣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씨는 “직장에 다니던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제조업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생을 실감하게 됐다”며 “월급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 편지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직원의 아내들은 남편의 수고가 담긴 월급봉투를 감히 버릴 수 없어 차곡차곡 모아둔다고 한다.

이 회사도 4년 전 주거래 은행의 ‘자동이체’ 독촉으로 월급봉투를 없앤 적이 있다. 그러나 몇달 못가 직원들이 원해 월급봉투로 되돌렸다.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손으로 만져지는 월급봉투에서 노동의 소중함과 돈의 가치를 실감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제는 소규모 제조현장이나 아르바이트 지급용을 빼고서는 월급봉투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편리성이 중시되면서 명세표조차 인터넷에 접속해 확인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월급봉투 대신 자동이체가 첫 등장한 것은 1980년. 은행들이 온라인 전산시스템을 갖추면서 월급 자동이체로 바뀌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전산망이 잘 돼 있는 은행권이 제일 먼저 시작했고 그 후 제조업으로 확산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은행들이 예금 유치를 위한 편리성과 함부로 돈을 안 쓰게 된다는 장점을 들어 기업들에 자동이체를 적극 권장했다”고 말했다.



월급봉투가 점점 사라지면서 ‘월급날의 풍경’도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신용카드가 ‘외상거래’를 대신하고 있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월급날 결제를 약속하고 외상으로 술과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월급날이면 회사마다 밀린 식대와 술값을 받으려는 주인들이 진을 치게 마련이었다.

월급날이면 애를 들쳐업고 남편의 직장에 나타나는 아내들도 있었다. 십중팔구는 월급날 ‘딴길로 새서’ 봉투째 날려버리는 ‘전과자’ 남편을 둔 경우.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삥땅’이란 말도 유행했다. 월급봉투를 통째로 아내나 외상진 사람들에게 넘기기 전에 비상금을 마련할 요량으로 ‘월급명세표 조작’이나 ‘이중 월급봉투’ 등 다양한 수법을 동원했다. 경리담당 직원은 월급 전날 꼬박 밤을 새기 일쑤였다. 지폐와 동전을 일일이 세어가며 봉투에 담아야 했고, 10원이라도 계산이 맞지 않으면 모든 봉투를 뜯어 다시 세어야 했다.



월급봉투의 두께는 성공을 가늠하는 잣대로도 여겨졌다. 회사에서는 봉투가 두툼할수록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가 컸다. 가정에서도 월급봉투는 큰 힘을 발휘했다. 평소 아내에게 쥐여살던 공처가들에게 월급봉투는 ‘가장의 권위’를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한달에 한번 월급날이나 돼야 큰소리를 쳤고 진수성찬 밥상을 받게 마련이었다.

30년 이상 봉급쟁이 생활을 하고 있는 이민학씨(50)는 “월급봉투는 가장의 자리를 지켜주는 심리적인 지지대 역할을 했다”며 “요즘은 아내가 현금카드를 갖고 관리하기 때문에 월급날이 언제인지 의식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월급날 많은 현금이 오고 가는 바람에 이에 따른 사고가 신문 사회면을 자주 장식했다. 대낮 은행 앞에서 직원 월급용으로 대규모 현금을 인출해가던 중소기업의 경리담당자가 날치기 당하는 사건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월말이면 버스 등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안부인사를 나눌 정도였다.

이제 월급봉투는 사라지고 있지만 이를 추억하는 마음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공무원들이 만든 인터넷사이트 좋은정보(www.zon.co.kr)에는 ‘다시 보고픈 추억의 월급봉투’라는 코너가 있어 ‘비록 풍성하지는 않았지만 봉투에 담아주던 그 월급날이 그립다’는 설명의 1970년대 노란 월급봉투 사진이 인기를 끌고 있다.



모든 것이 부족하기만 하던 시절. 월급봉투는 주름 파인 가장의 얼굴에도 한달에 한번쯤은 웃음꽃이 피게 했다. 아이들은 술 취해 들어오는 아버지의 손에 들린 과자봉지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아내는 ‘쥐꼬리만한 월급’이라고 바가지를 긁으면서도 받아쥔 월급봉투를 적금·학비·식비 등으로 알뜰히 쪼개 쓰며 살림을 키웠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초년생들은 첫 월급봉투를 받으면 부모님께 드릴 빨간 내복부터 사기 바빴다. 지금은 시간의 뒷 무대로 사라지고 있는 노란 봉투. 땀의 대가를 전하며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월급봉투의 추억’만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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