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비처럼 쏟아지는 하늘소 보았나요” 곤충에 폭 빠져 채집·전시·농장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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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2.13 09:14:01
  • 조회: 596
사실 박제원씨(39)와 곤충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그의 곤충농장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입을 딱딱 벌린다. 빛의 각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헬레나물포나비, 손바닥만한 브라질 타이탄 하늘소부터 전국 각지에서 채집한 하늘소, 나비, 꽃무지까지 1만5천여점의 곤충 표본이 전시돼 있다. 박씨는 ‘취미 수준’이라 말하지만 한 사람이 이만큼 모으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이 규모의 곤충 표본을 상설 전시하는 곳은 더더욱 없다.

“7~8년 전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산에서 말벌집을 가져와 보여주셨어요. 축구공만한 말벌집이 신기하더라고요. 산에 있는 이런 것들을 모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강화도에서 팽이버섯농장을 운영하던 박씨는 1998년 무렵부터 곤충에 빠져들었다. 밤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곤충 정보를 수집하고, 곤충채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93년 버섯농장을 열기 전까지 박씨는 학자의 길을 천직으로 생각한 생물학도였다. 중앙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초파리 진화·유전 연구로 석사학위도 받았다. 군 제대 후엔 팽이버섯에 빠져들었다. 미생물 조직배양으로 버섯을 만들어내는 팽이농장이 그에겐 실험실처럼 보였다. 공을 들인 만큼 재미도 좋았다. 한때 그의 ‘강화팽이버섯’은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도 알아주는 상등품(上等品)이었다.

농장 일을 하는 틈틈이 박씨는 표충망 하나를 둘러메고 전국 각지로 곤충을 찾아다녔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곤충은 1만2천여종. 지구상의 곤충은 모두 85만종이 넘는다. 박씨는 마음에 둔 곤충 한 마리를 잡으러 오대산, 춘천, 남해안을 두루 쏘다녔다. 3년에 한번씩 성충이 된다는 야생 참나무 하늘소가 ‘비처럼 쏟아지는’ 것도 보았고, 환경보호종인 물장군이 테니스 코트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도 보았다.



한번은 국내에서 딱 한번 채집됐다는 ‘후박나무 하늘소’를 찾아 거제도에 간 적이 있다. 단서는 단 두마디. ‘바다를 바라보고 잡는다’ ‘후박나무에 기생한다’. 물어 물어 찾아간 후박나무숲엔 파리 한 마리 날지 않았다.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며 벌레 먹은 나뭇가지 몇개를 가져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3개월 뒤, 나뭇가지 속의 애벌레가 바로 그 ‘하늘소’로 우화(羽化)했다. 박씨는 “곤충사에 남을 드라마틱한 사건”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잘 나가던 버섯농장을 정리하고 곤충농장을 연 것은 99년. 박씨는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를 애완용으로 사육해서 팔고, 그 돈으로 해외 곤충 표본을 사들였다. e메일과 전화로 일본·인도네시아 등지에 루트를 개척했다. 흰 몸뚱이에 긴 더듬이를 가진 ‘막가니 흰왕참나무 하늘소’, 세계 최대 크기의 ‘타이탄 하늘소’ 등 그의 일부 소장품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표본에 속한다.

두 날개를 펼치면 길이가 20㎝가 넘는 ‘말레이시아 대왕여치’, 파푸아뉴기니의 ‘파라다이스 버드윙 왕나비’, 아프리카에만 서식하는 세계 최대의 꽃무지 ‘골리앗 꽃무지’, 변태 순서대로 전시된 독거미와 장수풍뎅이 유충 표본은 여간한 전시회가 아니면 보기 힘들다. 표본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국내 곤충들은 박씨가 직접 채집한 것들이다. 쌀알만한 꽃무지의 다리 하나라도 부러질세라 조심스럽게 세워 핀을 꽂는 섬세한 작업을 거쳤다.



버섯농장을 개량한 150평의 곤충농장은 허름한 조립식 건물이지만 6개의 표본 전시실과 곤충 사육실이 있다. 판매용 곤충을 기르는 사육실에서 농장을 찾은 아이들에게 곤충의 생태를 직접 보여준다.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가 애벌레에서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보고 만져볼 수 있다. “보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직접 만져보고 느껴봐야 한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박씨의 강화 곤충농장은 곤충 마니아뿐 아니라 부산, 목포 등 먼 지방에서도 찾아오는 지역 명소다.

학자의 길을 포기한 것이 아쉽지 않을까. 박씨는 “지금이 더 좋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학자라고 해서 원하는 대로 연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습니까. 수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농장 시설을 보완해 ‘진짜’ 곤충생태박물관을 만드는 꿈을 갖고 있다. “아직 잡고 싶은 곤충이 많다”는 그는 봄이 오면 다시 표충망을 메고 산과 들을 헤집고 다닐 것이다. 더불어 그의 농장에는 ‘JW PARK’이라고 채집자의 이름표를 붙인 곤충 표본들이 또 늘어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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