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조금 덜벌어도 느리게 산다” 삶의 다운시프팅 (downshif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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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4.01.31 10:08:34
  • 조회: 504
속도를 줄입니다. 뒤에서 ‘빵빵’거리기도 하고, 옆으로 쌩쌩 달려가며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속도를 줄이자,
빨리 내달렸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새삼 들어옵니다. 늘 보던 길도, 집도, 사람들도 새롭습니다. 더불어 조마조마 조이던
가슴도 느슨히 풀립니다. 무엇보다 동승(同乘)한 가족들 얼굴이 다시 보입니다. 아, 눈썹이 저렇게 올라갔었나. 어, 귀 밑에 점이
있었네. 얼마나 속도의 노예로 살아왔으면….

속도에 휘둘리고 치이는 생활에 브레이크를 밟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지위나 수입에 연연하지 않고 ‘느리게’ 삶을 즐기려는 바람에서
입니다.

다운시프트(downshift)족.

‘질주하는 자동차 속도를 늦추듯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사람’이란 뜻의 신부류입니다. 돈과 출세 대신 삶의 여유에 더 무게를 둡니다.
물질보다 마음을, 사회적 성공보다 가정 생활에 보다 가치를 싣습니다. 해서 어지러울 정도로 빨리 돌아가는 삶, 숨막히는 속도경쟁에서
자청해 내려섭니다. 속도에 쫓겨 잊고, 잃어버렸던 나와 가족을 찾고 싶어!!

당장 살림의 방향을 완전히 틀기는 힘들지라도, 가끔은 생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밟고 나를 되돌아보는 것. 부적응이나 게으름과는
다른 ‘느림의 미학’이 주는 힘에 삶이 충전됩니다. 자, 한번쯤 속도를 줄여보지요. 삶의 다운시프팅(downshifting).


다운시프트족은 서구적 현상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0년 전쯤부터 싹트기 시작, 다양한 갈래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성취보다 개인의 삶 구현에 가치를 부여하는 2030세대가 사회의 주축으로 성장하면서 이런 흐름이 두터워지는 추세다. 하지만 고실업과
조기퇴직 시대에 가진 계층의 ‘여유’일 뿐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다운시프트족은 왜 생기나



우리나라에서 다운시프트족의 뿌리가 본격적으로 생긴 시기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90년대 중·후반부터다. 변화경영 전문가
구본형씨는 “인터넷 네트워크화가 진행되고 환경이 빠르게 바뀌면서 사람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충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운시프트족과 비슷한 ‘슬로비족’이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생긴 것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스피드의 압력이 가시적으로 들어오던 때였다.

유럽, 미국 등의 서구 선진국에서 다운시프트족, 슬로비족이 대안적인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은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인식이
커지는 과정에 있다. 조한혜정 교수(연세대·문화인류학)는 “사회적으로는 아직도 성공이 삶의 중요한 목표지만 자세히 보면 일상생활에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인식이 많이 퍼져있다”면서 “다만 이 점을 인식했을 때 다른 체제로 탈출하거나 다른 시·공간대로 이동해야
하는데 필요한 대안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는 층은 아직 적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운시프트족도 양극화



다운시프트족도 계층에 따라 양극화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에서도 고수입을 보장하는 도시의 직장을 과감히 버리고 시골로 내려가거나
직업을 바꾸는 경우가 25%인 반면 현재의 직장에 머무르면서 자기 시간이 많고 스트레스가 덜한 부서를 모색하는 이들이 75%에
달한다. 전자(前者)는 변호사, 투자은행가, IT업계 종사자 등 전문성을 갖춘 고소득 직종이 태반을 이룬다. 후자(後者)는 당장
직업을 바꾸거나 거주지를 옮기기 어려운 계층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다운시프팅(downshifting)이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도 돈을 잘 버는 전문 업무능력을 바탕으로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층과 소비 수준을 줄이는 방법으로 다운시프트
생활을 해야 하는 층으로 나뉜다는 것이 전문가들 전망이다. 구본형씨는 “고도의 업무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적은 시간 노동으로도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개인시간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다운시프족 가운데 의사, 금융업자 등 성공한 전문가가 많은
것도 이같은 이유”라고 분석했다. 또 “전문성 없는 사람들이 다운시프트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더 벌지 못하더라도 내 스타일대로
살겠다’는 방향으로 생활태도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한혜정 교수도 “여피족이 고학력이듯 다운시프트, 웰빙 등의 개념은 계층과 관련이 깊다”며 “새로운 개념의 생활태도를 만들어낼
여력은 돈이나 문화자본을 가진 계층에서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적 다운시프트의 미래



지금과 같은 속도전의 경쟁사회가 지속될수록 다운시프트족이 더욱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다만 다운시프트가 삶의 대안으로 자리잡기까지는
특수한 한국적 상황을 소화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한혜정 교수는 “압축성장을 한 우리나라는 근대와 탈근대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저속기어로 갈 수 있는 기본인 고속기어의 삶을
경험하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을 1~2년 다니다 그만둔다거나, 문화적 감수성을 갖고 있는 중산층의
젊은 세대가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등 근대적 조건에서 ‘빡세게’ 일해보지 못한 채 어중간한 경험을 하기 때문에 대안적 삶의 형태를
만들어낼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조한교수는 “지금의 학교체제는 싫지만 그렇다고 보낼 만한 학교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삶의 돌파구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새로운
스타일을 만드는 사람이 나오고 이를 따라하는 사람이 늘면서 사회가 재구성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조건도 지금보다 유연해져야 다양한 형태의 삶을 추구할 수 있다. 구본형씨는 “‘3일만 근무하고 예전 보수의 60%만 받는다’는
식의 근무조건은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전문성을 갖고 있는 분야의 경우 이런 식의 변화가 급격히 올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 “군데군데 삶의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 하는 건 결국 ‘나를,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라며 “자신만의 철학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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