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故김대진씨 투병일기‘지상의 병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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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3.12.19 11:19:47
  • 조회: 493
삶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눈물겹다. 여기, 1999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김대진씨가 있다. 마흔살. 생을 마감하기엔 너무도 아까운 나이였다. ‘사랑한다’ ‘행복하다’는 말을 남기고 김씨가 떠난 지 4년. 지난 9월 그가 남긴 투병일지와 남은 이들의 글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됐다.

#떠나는 이의 기도

김씨가 가톨릭대 의정부 성모병원을 찾은 것은 99년 10월. 이미 2차례의 수술을 받은 터였다. 2년간의 항암치료로 새카맣게 야윈 김씨에게 의사는 “집으로 돌아가 요양하라”고 권했다. 김씨는 황달로 노래진 큰 눈으로 “차라리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애원했다. 3인실 병동에서 그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그를 찾은 한 수녀가 호스피스 병동을 권했고, 김씨는 그곳에서 생의 마지막 날들을 보냈다.

가족들의 사진, 아이들의 글, 액자와 선물로 김씨의 9114호 병실은 마치 ‘집’처럼 꾸며졌다. 호스피스와 수녀들은 그의 마른 몸을 꼭 끌어안고 노래와 기도를 들려줬다.

이따금 몰래 숨어 담배를 피우는 그를 발견하고도, 호스피스들은 눈만 흘길 뿐 말리지는 않았다. 병원의 허가를 받아 떠난 산정호수로의 여행. 김씨는 “차 안에서 소라, 번데기, 솜사탕, 밤을 먹었다. 너무나 오래 잊고 있었던 군것질이었다. 시간이 가는 것이 아까웠다”고 토로했고, 가수 안치환의 ‘내가 만일’을 들으며 “아내에게 직접 불러주고 싶었지만 눈물과 흐느낌 때문에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담담하게 삶을 정리해갔다. 손목은 가늘대로 가늘어져 주사를 놓으려면 ‘금맥’을 찾듯 핏줄을 찾아내야 했지만, 고통 속에서도 그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다음 세상에서 하고픈 수백가지의 일’을 기록했다. 캠퍼스 커플로 만나 20년을 함께해 온 아내에게, 두 아이에게, 누나와 아버지에게, 그리고 친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글을 남겼다.

그렇게 40일이 흐른 뒤, 김씨는 지상의 마지막 방을 떠났다. “어차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죽음, 그 앞에서 가능하면 초연해지리라 마음먹었다”는 그는 임종 이틀 전, 마지막 글을 남겼다. 글은 소망의 기도로 끝난다. ‘세상 떠나는 어느날/이 세상을 향해/잘 살았노라고, 행복했노라고 웃음 지으며/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활짝 웃으며 눈을 감는 것입니다/감사합니다.’

#남은 이들의 선물

지난 1월 다음 카페 ‘호스피스 사랑방’에는 ‘사랑으로 만든 책’이라는 게시판이 생겼다. 제안자는 김씨의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송창열씨. 김씨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의 메모를 모아 책을 펴내자는 것이었다. 답글 행진이 이어졌다. ‘저도 뒤에 줄 서겠습니다’ ‘사랑에는 망설임이 필요 없습니다’라는 사랑의 헌사들로 게시판은 채워졌다. 한 달 사이에 4백만원이 모였다. 한 권에 6,000원씩, 미리 주문을 받고 출판된 뒤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회원들은 한 권에 3만원, 두 권에 5만원씩 주문을 했다.

병석에 누운 김씨가 한줄 한줄 써내려간 메모, 힘이 부치면 구술로, 그도 안되면 녹음으로 남긴 이야기들은 누나 김정숙씨에 의해 원고로 다듬어졌다. 그렇게 책은 지난 9월 ‘지상의 병실 하나’(도서출판 황금알)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김대진 미카엘과 ‘호스피스 사랑방’의 공동 저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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