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깊고 간절한’삶이 지는 곳… 호스피스 병동 “세상 소풍 끝나는 날, 우린 함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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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3.12.19 11:19:09
  • 조회: 656
서울 서초구 반포동 505. 강남성모병원 내 호스피스병동은 병원에서도 혓볕이 잘드는 양지바른 남쪽에 있다. 창밖 경관이 좋은 곳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건물 3층을 차지한 호스피스병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살아서 들어오지만 살아서 나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죽음의 병동. 그러나 만일 호스피스란 말에 선입견을 가졌다면, 버리는 게 좋다. 여기서는 별반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엘리베이터 옆 ‘임종실’이란 팻말이 붙어 있는 방을 제외하곤 말이다.

임종실 옆에는 기도실이 있다. 간절한 기도의 장면을 예상했다면, 이 또한 오산이다. 여느 병실과 마찬가지로 고통이 있지만, 간혹 행복한 웃음소리도 퍼진다. 호스피스병동은 죽음을 준비하는 곳이지, ‘죽음병동’이 아니다. 치열하면서도 평화로운 삶의 마지막 장면이 유장하게 이어진다. 짧지만 말이다. 임종실의 살짝 열린 문틈으로 처연한 풍경이 들어왔다. 죽음을 앞둔 이가 침상에 누워있다. 그의 손을 잡고 또 누군가 병상에 고개를 숙이며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을 건네고 있었다.

간호사실 벽면에 붙어있는 환자 명부에서는 병명을 찾을 수 없다. 누구나 말기암이다. 게서 위암 4기는 평범한 병일 뿐이었다. 병상은 모두 16개. 죽음을 기다리는 16개의 짧은 삶이 공존한다. 보통 죽음을 2~3개월 남기고 들어온다. 드물게 입·퇴원을 반복하며 1년반을 버틴 환자도 있다. 46살의 창창한 나이에 뇌육종에 걸린 그 환자는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이 너무 괴로워 스스로 식사를 끊기도 했다. 대부분은 죽음을 수용한 환자들이다. 꼭 해야 할 일. 반드시 정리할 것. 또 떠날 준비까지. 2~3개월이란 기간은 안타깝게도 너무 빠듯하다.

지난 1월 이곳에서 삶을 마무리지은 25세 청년. 그 청년의 위암은 집안 내력이었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위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다. 대학재학중 군대를 다녀와서 투병중인 어머니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집안내력은 위암뿐이 아니었다. 가난 또한 동반됐다. “가난이나 물려주지 왜 병까지 물려주느냐”는 청년의 절규는 이곳 의료진의 귓가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가 미련 많은 짧은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어느 날. 의료진과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은 다용도실에 간이극장을 만들었다. 생의 마지막 행사로 겨울 강을 보여주고 싶었다. 젊은 환자는 ‘가문의 영광’이란 비디오를 보여달라 했다. 다용도실에 마련된 극장에서 그 청년과 가족, 자원봉사자, 의료진이 함께 비디오를 봤다. 마리아나다시아 수녀의 무릎에 고개를 기댄 청년은 사이사이 모르핀을 맞아가며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영화였다.

어디선가 찬송가가 들려왔다. 에이즈환자인 김모씨(40)의 병실에서였다. 자원봉사자들이 김씨를 둘러싸고 찬송을 함께 하고 있었고, 김씨 또한 찬송가책을 펴놓고 허리를 약간 세운 채 들릴듯 말듯 노래를 따라 불렀다. 탁자 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사온 듯한 홍시 서너개가 놓여 있었다. 최혜란 수간호사가 “찬송가 부르는 소리가 안들려요?”하고 씩씩하게 말을 건네자 김씨는 힘들게 고개를 돌리며 환하게 웃었다.

최간호사는 이곳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다. 1988년 문을 연 이래 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숨을 거두는 환자는 매년 300명이 넘는다. 지난해에는 321명이 사망했다. 그는 얼추 500명 가량의 죽음을 지켜봤다. 최간호사는 환자들이 흔히 말하는 ‘부정·분노·우울·타협·수용’의 5단계를 반복해서 겪는다고 전한다. 따지고 보면 삶의 모습이 그게 그것이듯 ‘죽음에 이르는 길’ 또한 비슷하다. 그 길에는 빈부귀천의 차이가 없다. 똑같은 고통과, 가능하다면 똑같은 평화에 이른다.

1인 병실보다 4인실에서 죽음의 준비가 더 쉽다고 한다. 모두 치명적 병을 안고 있는 동병상련의 정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삶의 마지막 친구가 된다. 그리고 어느날 그중 한명이 침대째 실려나간다. 그렇게 병실 구성원이 3명쯤 바뀌면 병실 고참은 다소 편하게 죽음을 기다리게 된다.

죽음의 순간 마지막 호흡은 아주 깊다고 한다. 1분에 2~3번 정도, 혼을 토해내듯 숨을 쉰다. 호스피스병동에서의 삶도 그러하다. 아주 깊고, 또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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