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전원일기] 이덕주씨의 귀농 희망가 “시골에는 정년이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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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3.12.09 10:41:12
  • 조회: 414
월급쟁이라면 한번씩 하는 생각,

“에잇! 회사 때려 치고 농사나 지어야지.” 말은 쉽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당장 농사가 잘된다는 보장도 없다. 옆에 누운 식구들을
보면 더더욱 지금의 생활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



충남 천안시 병천면 봉화1구에서 오이농사를 짓고 있는 이덕주씨(43)는 서른 여덟에 ‘불과’했던 1997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향했다. 충북 청주의 유명한 전기회사에서 또래보다 승진도 빨랐던 그가 젊은 나이에 도시를 버리고 농촌을 찾은 이유는 뭘까.

“집사람과 맞벌이를 했지만 오히려 돈은 모이지 않았습니다. 영업직에 근무하면서 협력업체 경조사를 챙기고 술접대 하느라 쓰는 돈이
더 많았으니까요. 돈뿐만 아니라 몸은 몸대로 축났습니다.”



이씨는 마음이 허할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 동네 어른들과 술 한잔을 나눴다.

“술김에 ‘형님 저 내려와서 농사 지을래요’라고 했는데 제 말이 절실하게 들렸던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 형님은 그 길로
비닐하우스 자재를 사다놓고 제가 내려오기를 기다리셨대요.”

월급쟁이의 고단함은 대리로 승진한 다음 더 심해졌다. 실적에 책임도 져야 했고 만나야 할 사람은 더 많아졌다. 게다가 직속 상사의
빚보증을 선 것이 잘못되자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도 들었다. 1997년 10월 사표를 냈다. 한달 후에 외환위기가 닥쳤다. 서너 달만
늦게 사표를 냈어도 명예퇴직금을 받고 나올 수 있었을텐데 운도 안따르는 듯했다. 사표를 낸 이씨는 중학교때까지 살았던 지금의 동네로
곧장 내려왔다. ‘농사짓는다’는 말을 농담으로만 들었던 부인 김이선씨(41)도 이씨의 진심을 알고 따라 내려왔다. 당시 여덟 살과
한 살이던 딸들을 데리고서.



고향에는 이씨의 아버지가 물려준 600평의 땅이 있었을 뿐 모든 것이 부족하고 낯설어 적응이 쉽지 않았다. 당장 살 집이 마땅치
않아 비어있던 마을회관을 수리해서 들어갔다. 비닐하우스 4동을 세우고 이 고장 특산물인 오이를 길렀다.

“처음에는 오이 따는 방법도 몰랐습니다. 동네 형님들에게 ‘오이 이렇게 따는 것 맞느냐. 오이잎 색깔이 변했는데 무슨 병에 걸린거냐’고
일일이 물어보며 다녔죠.”



귀농 첫 1년 동안의 실적은 마이너스 2천만원. 대출받은 1천30만원의 귀농자금과 비닐하우스 재료 등 들어간 돈은 많은데 수확한
오이는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이 손에 익기 시작한 귀농 3년째 되던 해에 비닐하우스 수를 늘렸지만 그해 여름 오이는 태풍으로 모두 날라갔다. 윗마을에 750평의
땅을 추가로 빌렸다. 매출 규모는 조금씩 늘었지만, 이익을 내지는 못했다. 설상가상 지난해 1월엔 폭설로 비닐하우스까지 무너졌다.


“그땐 집사람과 서로 껴안고 울었죠. 빚만 자꾸 늘어났고요.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되나’하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전화위복이었을까. 폭설로 오이작황이 나빠지자 값이 뛰었다. 이후 일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오이 품질이 좋아
서울 양재물류센터에 좋은 값을 받고 공급하게 됐다. 귀농 여섯해째, 비로소 농사짓는 기쁨을 실감하기 시작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농사는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와서 좋습니다. 몸은 힘들지만 직장생활에 비하면 맘은 훨씬 편하죠.”

실제 회사생활할 땐 53㎏ 아래에서 맴돌았던 몸무게가 지금은 67㎏으로 늘었다. 부인 김씨도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앞으로 4년은 더 지금처럼 열심히 일해야 완전히 안정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멀었죠. 중학교 1학년과 유치원생인 두 딸은
중학교까지는 동네 학교에 보낼 거고요. 대학을 가고 싶다고 하면 시내로 고등학교를 보낼 생각입니다.”

김씨가 털어놓은 계획은 절실하면서도 소박하다.

이씨 부부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의 귀농에 대해 “농사는 결국 ‘노하우’”라고 답했다. 자기만의 기술을 개발해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는 것. 아니나 다를까, 농한기인 지금 부부는 내년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기계를 이용해 오이를 딸 수 있도록 자동화시설을
설치하고 있는 중이다. 완성되면 내년부터는 같은 분량의 일을 해도 두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농사 짓는다고요? 지금은 ‘더 일찍 했을 걸’하는 후회가 듭니다. 시골엔 정년이나 명예퇴직이 없잖아요. 내가 힘 될
때까지 할 수 있는 게 농사입니다.”



이씨 부부가 농촌에서 희망을 찾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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