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대표적인 치들 ‘음치·길치·몸치’ ‘음치·길치·몸치’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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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3.10.16 09:46:22
  • 조회: 522
‘~치(癡)’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어리석음’. 길치·음치·박치가 대표적인 치들이다.

여기에 더해 요즘은 춤을 못추는 몸치도 자주 거론된다. 음치는 예전부터 교정 클리닉이 있다. 몸치도 손쉬운 ‘나이트댄스’를 중심으로 전문 학원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노래나 춤은 못춰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다.



그러나 길치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약속 시간에 늦는 등 적잖은 골칫거리를 제공한다. 다행히 휴대폰이나 PDA 등의 GPS(위성항법장치) 기능에 힘입어 길치도 답답함을 차츰 풀고 있다. 그러나 길치이면서 기계를 다룰 줄 모르는 ‘기계치’라면? 다시 눈앞이 캄캄해진다. 이러한 음치나 몸치·길치를 2~3개씩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안타깝게도 각종 ‘치’에 잘 듣는 묘약이나 치료법은 따로 없다. 본인의 부단한 노력만이 치를 극복하는 최선책이다. 대표적인 ‘길치·음치·몸치를 위한 변명’을 마련했다.


# 음치는 괴로워

“솔 도 미 파 솔~, 야 야 야 야 야~”

밤 9시 서울 성북구 길음동의 한 음치 치료센터. 10년차 직장인 강모씨(37)가 건반에 맞춰 발성연습을 하고 있다. 솟아오른 목줄기 핏줄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서는 결연함이 넘친다. 이곳에 다닌 지 3개월째. 아직 발성과 음절만 하나씩 익히고 있다. 하지만 제법 잘 따라 부른다.

“아내와 연애시절에 노래방에 갔을 때도 혼자 부르는 노래는 절대 안골랐죠. 듀엣곡을 고르고선 저는 입만 뻥긋거리며 아내가 거의 다 부르게 했습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음치란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아야 했죠”

둘이서는 그나마 마음이 편했다. 강씨는 직장 회식자리가 가장 무섭다. 밥이나 술자리가 끝나갈 때면 이만저만 걱정되는 게 아니다. 마지막 코스는 노래방일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처음 노래방에 갔을 때는 중간에 화장실에도 가고 딴청을 피우거나, 따라 부르는 척도 했다. 그러다 어느새 ‘예약’된 곡이 바닥났다. “강선생도 한곡 해야지”.

곧바로 심장 고동소리가 귓속을 가득 메웠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번호를 눌렀다. 그날 어떤 곡을 골랐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용케도 첫 음정은 엇비슷하게 잡았다.



얼마 못가 박자가 점점 어긋나고, 음정마저 오락가락, 결국 삼천포로 빠졌다. 고음 처리에선 최악이었다. 발끝부터 머리카락까지 힘이 들어갔다. 뒤로 한껏 젖힌 목에선 꺾인 “삑~” 소리가 나왔다.

간신히 1절을 끝내기가 무섭게 ‘종료’ 버튼을 눌렀다. 분위기가 썰렁했다. 다들 “목소리는 좋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 뒤로 누구도 감히 강씨에게 마이크를 넘길 엄두를 못냈다. 강씨도 1차에만 참가하거나, 아예 회식자리에서 빠졌다.

“회식에는 가도 스트레스, 안가도 스트레스 받죠. 점점 대인관계도 위축됐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어요. 남들 앞에서 한곡이라도 당당하게 불러보려고 노력중입니다”

그는 일단 음정, 박자를 워낙 못맞춘다. 집에서 컴퓨터를 켜놓고 부르거나 카세트에 녹음도 해서 들어봤다. 혼자선 아무리 연습해도 잘 늘지 않더란다. 이렇게 해서 강씨는 음치교정을 받기로 했다.

강씨는 여느 음치들처럼 호흡법에 문제가 있다. 높이 안올라가면 목에 힘부터 준다. 그러면서 고개를 젖힌다. 목소리만 갈라질 뿐이다. 다른 곳엔 힘을 빼고 배에만 힘주는 연습을 한다. 현재 연습곡 몇곡은 음정을 75% 정도 맞춘다.

“음정 하나 하나 따라부르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러나 섣불리 노래방엔 안간다. 박자교정은 덜 된 상태이기 때문. 자칫 욕심이 앞섰다가 흐트러질 위험이 크다. 약 3개월쯤 참은 뒤 강씨는 보란 듯 동료들에게 뽐낼 참이다. 몇곡이라도 씩씩하게 부르는 게 어딘가.



# 길치는 피곤해

영업사원인 나는 얼마전 회사일로 의왕시에서 곤지암을 가게 됐다. 처음 거래를 트는 자리라 중요했다. 사실 난 심각한 길치라서 과장에게 길을 확실히 물어봤다.

“응, 곤지암? 잠깐이면 가. 여기서 외곽고속도로 타고 판교쪽으로 가다가 중부 타고 대전 방향으로 가다보면 곤지암 이정표 나와. 한 1시간 걸리나?”

속으로 ‘헤매도 2시간이면 가겠구나’ 싶었다. 처음엔 외곽고속도로 타고 판교로 잘 갔다. 가다보니 판교·대전쪽으로 빠지는 길이 나왔다. ‘아, 여기구나’ 싶어 그리로 갔다. 그리고 1시간쯤 지났을까. 뭐가 좀 이상했다. 전화를 걸었다.

“과장님 전데요. 지금 대전쪽으로 빠져서 한 1시간 왔는데, 이정표가 안보여 물으니 천안이라는데요?”

“야 ××, 중부 타랬지 언제 경부 타랬어! 그러면 천안으로 빠져서 국도로 가. 그게 거기선 빠를 거야”

천안에서 빠진 뒤 신호 대기할 때 택시기사한테 물었다. 용인쪽으로 가라고 친절히 일러줬다. 아무 생각없이 용인쪽으로 몰았다. 가다보니 작은 시내가 나오고 또 길이 좀 이상했다. 아무튼 멈출 수 없어 가는데, 이게 아닌 듯 싶었다. 구청에 차를 대고 물어봤다.

“내 20년 넘게 근무했는데, 여기서 곤지암 물어보는 사람은 처음이네”

그러더니 지도를 꺼냈다. 사실 나는 지도에도 까막눈이다. 자세히 알려줘서 겨우 용인 근처로 갔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4시간이 훌쩍 넘었다. 거래처는 문닫은 뒤다. 돌아와 과장한테 욕먹고, 기운은 없고, 화풀이할 데도 없고….



# 백치는 결코 아니야

3년 전 생일에 아는 사람에게 작은 나침반을 하나 선물로 받았다. 나는 그러니까 천하무적 길치다. 백치도 아닌, 길눈이 어두운 길치다. 천성적으로 공간 지각능력이 남들보다 한 20배는 부족하다. 한번 갔던 장소는 절대 다시 찾아가질 못한다. 학교때 제일 친한 친구의 집도 세번 정도 가보고서야 겨우 알았다.

지하상가 계단을 내려가면 밖에서 보아둔 출구로 절대 찾아나가지 못하고 꼭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온다. 한번은 세차례나 엉뚱한 곳으로 나오게 됐다. 날은 덥고, 다리는 아팠고, 그리고 결국은 나에게 화가 났다. 나침반을 선물받은 뒤로는 그런대로 지하상가 계단은 빠져나오는 편이다. 길 밖에서 나가야 할 출구쪽 계단을 나침반으로 보아두었다가 지하에서는 죽어라고 그쪽으로만 전진한다.

나는 항상 불안하다. 길을 걸으면서도 모든 게 낯설다. 되돌아나오는 길은 처음 와본 길처럼 생소하다. 모든 게 반대니까. 어느 곳을 가든 낯설고, 생소하고 처음 와본 길 같다. 방향을, 도무지 방향을 모르겠다.


“차를 몰다가도 새로운 길이 나오면 죽어라고 그곳으로 가서 지름길을 찾아냈다”고 의기양양해 하는 주변 사람을 보면 나는 탁 주눅이 든다. 아아, 동서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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