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정년, 신화는 끝났다 30대까지 번지는 新명예퇴직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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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교차로협의회
  • 03.10.13 09:35:55
  • 조회: 573
다시 명예퇴직 바람이 불고 있다. 장기 경기침체에 따라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들이 앞다퉈 명예퇴직제를 실시하거나, 추진중이다. IMF 외환위기 때의 규모에 맞먹을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5년여만에 명퇴가 다시 우리 사회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작금의 명퇴는 IMF 때와는 완연히 다른 양상이다. ‘신(新)명예퇴직’ 시대의 개막이다.

우선 명퇴 연령이 50대에서 40대, 심지어 30대로 낮아졌다. 직장에 입사한 지 15년을 갓 넘긴 대리급이 명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전직원의 12.6%에 해당하는 5,505명이 명퇴를 한 KT(옛 한국통신)에서 532명이 30대다. 대리급이 전체 70%에 육박했다. 명퇴 신청을 받고 있는 우리은행과 두산중공업도 30대까지 대상을 확대시켰다. 가히 30대 명퇴 시대다.
아울러 작금의 명퇴는 자발적 선택의 경우가 많다. KT는 당초 명퇴 신청을 받으면서 2,000명 정도를 기대했다. 마감 결과는 회사측마저 놀라게 했다. 내심 회사측이 바라던 ‘갈참’급이 아닌 조직의 주축을 이루는 30대가 대거 신청을 하자 부랴부랴 대책회의까지 열 정도였다. 예상보다 많은 숫자에 한때 회사측은 심사를 통해 명퇴자를 골라내는 방안을 검토했고, 신청자들은 명퇴를 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풍경마저 빚어졌다.

KT에서 촉발된 자발적 명퇴 바람은 기본적으로 ‘쫓겨남’이었던 5년여 전 외환위기 때와는 선명히 대비되는 특징이다. 더욱이 지금은 실업의 광풍이 거센 시점이다.
왜, 무슨 까닭에 한참 일할 ‘젊은’ 사람들이 ‘제 발로’ 명퇴 대열에 나서는 것일까. 학업기간이 한참 남은 자녀들을 둔 가장들이 스스로 명퇴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KT의 경우 상대적으로 많은 명퇴금을 지급했지만, 이것저것을 제하고 나면 퇴직자 1인당 받은 평균 명퇴금은 1억원 정도다.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기에는 결코 넉넉한 자금이 아니다. 명퇴금만으로는 자발적 명퇴 바람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외환위기 때도 금융업계 등에서 상당한 명퇴금을 걸었지만, 명퇴금보다는 어떻게든 직장에 남으려 했다.

원인은 불안이다. ‘사오정시대’로 일컬어지는 요즈음 직장의 미래에 대한 불안, 외환위기 이후 5년여 동안 선배들이 직장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쌓여온 불안이 명퇴 신청서에 도장을 찍게 하고 있다. 경영환경 변화와 기술습득 등에서 뒤처질 것이란 불안, 결국 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명퇴의 길을 택하게 만들고 있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샐러리맨 생활에 자신과 가족의 삶을 의지하느니, 기회가 생겼을 때 제2의 인생을 가겠다는 ‘희망퇴직’인 셈이다. 그 희망이 성공이 담보된 것이 아님에도 명퇴를 자청한 것은 그만큼 현재 직장생활이 불안하다는 얘기다.

정년을 9년 앞두고 이번에 KT에서 명퇴한 김양규씨(49)는 “정년퇴직을 당연히 여기던 선배들이 외환위기 때 억지로 떼밀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무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을 바쳐 다녔던 회사인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실제 김씨는 업무 부담이 적은 야근을 이용해 공인중개사 공부를 해 자격증을 땄다. 이제 1년 정도 공인중개사 관련 공부를 더 한 후 부동산 중개업소를 차릴 계획이다. 김씨는 “50대 이후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따져보니 지금이 새출발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과 중학교 1학년인 두 딸을 둔 김형중씨(45)도 적극적으로 명퇴를 선택한 경우다. 동료들이 마련해준 명퇴 ‘축하’ 환송회에서 “새생활에 마음이 설렌다. 고마웠다. 잘 살겠다”고 인사했다. 그는 “2년 전부터 이민을 생각했다. 아이들 교육문제, 새로운 인생 등을 생각해 꾸준히 영어공부도 해왔다. 때마침 좋은 조건으로 그만둘 수 있게 돼서 오히려 회사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 가족은 오는 24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으로 떠난다. 1~2년 정도 어학연수를 한 뒤 한국인과 일본인 등을 상대로 관광가이드를 하며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다.

30대 명퇴자들도 정도는 다르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직장을 떠난 원인이라고 얘기한다. KT내 핵심부서인 기획실에 근무하다 퇴직한 이모씨(33)는 “안정적 삶이 보장되는 변리사 공부를 하겠다”고 밝혔다. KT 노동조합 이존화 사무국장은 “경쟁력 있는 젊은 직원들은 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을 가지고 보다 나은 직업을 찾을 기회로 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작금의 명퇴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직업과 직장의 개념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 바람이다. 평생직장의 신화는 사라졌다. 샐리리맨들은 한때 ‘희망’이었던 직장을 스스로 나와 확실한 보장이 없는 길로 나서고 있다. 다시 불어닥친 명퇴 바람은 2003년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불안하면서도 새로운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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