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뜰정보] 츄리닝’ 누가 촌티난다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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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전국교차로협의회
  • 03.07.18 11:15:59
  • 조회: 678
#출세했다, 츄리닝!!

하루종일 방바닥에다 ‘X레이 촬영’을 하던 백수, 동전 한푼 아끼려고 남편이 입던 옷 물려받아 김칫국물에 밥풀까지 묻힌 채 동네 나들이에 나서는 아줌마, 밤낮없이 공부만 하는 고시생들. 이들의 ‘통일 복장’으로 대표되던 ‘츄리닝’(트레이닝)이 성형수술을 하고 신분 상승을 선언했다. ‘빈티’와 ‘촌티’를 벗고 부티나게,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캐포츠’(캐주얼 스포츠) 패션의 리더로 화려하게 변신한 것.

최근 드라마, 영화, 가요, 광고계 역시 츄리닝이 접수했다. 주인공들은 명품 수트나 드레스가 아니라 모두 츄리닝 차림이다.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에서 주인공 김래원과 정다빈은 잘 때나 공부할 때나 줄기차게 츄리닝 차림이다. KBS 드라마 ‘보디가드’에서도 차승원은 츄리닝복으로 긴 다리를 자랑했다. 영화 ‘똥개’의 정우성은 꼬질꼬질한 초록 츄리닝 차림으로 백수의 진수를 보인다. 가수 자두는 신곡 ‘김밥’을 노래하며 츄리닝 패션으로 승부한다. 광고에서도 전지현·이영애·이효리 등 톱스타들이 이 복장으로 땀을 흘리거나 요가하는 섹시한 모습을 보여준다.

불황에 시달리던 패션계에도 이 트레이닝복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단정하고 클래식한 수트는 잘 안팔리는 데 비해 트레이닝복이나 이를 응용한 스포츠룩은 불티나게 팔린다. 아디다스, 나이키, 퓨마 등 스포츠전문 브랜드는 물론 BNX, A6, EXR 등 신규 브랜드들은 캐포츠 스타일을 주력상품으로 해 급성장했다. 패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 스포츠메이커는 각각 50여만장의 트레이닝 웨어를 생산했다. 김래원의 옷을 협찬해주는 ‘쿨하스’의 경우 옥탑방이 인기를 얻은 후 매출이 30% 급증해 아예 매장에 트레이닝복과 티셔츠 등을 묶은 ‘김래원 코너’를 따로 만들었다. 인터넷에서도 ‘츄리닝 전문 쇼핑몰’이 늘고 있고, ‘츄리닝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 동호인 모임에선 ‘츄리닝 멋지게 입는 법’ ‘싸고 예쁜 츄리닝 사는 곳’ 등의 정보를 교환한다.

#이소룡과 신디 크로퍼드

속칭 ‘츄리닝’으로 불리는 트레이닝복은 물론 운동복이다. 아디다스에서 1970대 중반에 바지 옆선에 세 줄의 바이어스를 댄 제품을 선보이며 ‘아디다스 라인’이 트레이닝복의 대표 스타일이 되었다.

그런데 21세기에 왜 ‘구닥다리’ 츄리닝이 돌풍을 일으키는 걸까.
물론 그동안 츄리닝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1970년대 말 이소룡은 ‘정무문’ ‘용쟁호투’ 등의 영화를 통해 쌍절곤과 함께 츄리닝 붐을 일으켰다. 상의는 꼭 붙는 러닝셔츠, 하의는 헐렁한 노란 츄리닝을 입고 ‘아요오’를 외치며 그를 흉내내던 청소년들도 이젠 중년 아저씨가 됐다. 그후 츄리닝은 ‘백수 패션’ ‘고시촌 패션’ ‘10년 이상된 마누라 패션’ ‘잠옷 패션’ 등의 누추한 수식어와 함께 궁상과 구질구질함의 대명사로 여겨져왔다. 그러던 츄리닝이 이젠 섹시하고 아름답고, 심지어 부티나는 ‘캐포츠룩’의 주인공으로 환골탈태했다. 2년 전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가 아디다스와 함께 패션쇼를 해 화제를 모았고 프라다, 샤넬 등 명품에서도 트레이닝복 스타일의 스포티브룩을 선보였다.

또 모델 신디 크로퍼드가 퓨마 트레이닝 바지에 날렵한 하이힐을 신은 모습이 ‘보그’지에 소개되며 “츄리닝이 이렇게 섹시하다니!!” 하고 감탄한 여성들이 너도나도 트레이닝복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소룡 스타일의 츄리닝은 1만원대에 살 수 있지만, 청바지에 데님바이어스를 덧대 롱다리로 보이는 돌체가바나의 츄리닝 스타일 청바지는 한벌에 1백만원 정도의 고가에 팔린다.

#성형발보다 운동발

전문가들은 요가나 인라인스케이트 등 생활스포츠의 열풍, 주5일제 근무 확산, 직장에서의 캐주얼복 바람 등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트레이닝복의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분석한다. 물론 지난해 붉은 악마 등 월드컵 열풍, 이소룡 등 70~80년대 복고문화에 대한 향수도 기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제 ‘아름다움’이나 ‘옷’에 대한 가치기준이 달라졌다. 신원 ‘씨’의 박란실 실장은 “경기침체와 전쟁 위험 등 살벌한 분위기의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옷에서라도 자유롭고 편안함을 추구해 언제 어디서나 활용할 수 있고 활기찬 트레이닝 패션을 찾는 것 같다”고 말한다. 평소 회사에 출근할 때도 트레이닝 패션을 즐긴다는 김혜미씨(27)는 “우리 세대는 얼굴보다 몸을 더 관심있게 본다”며 “과거 우리 아버지 세대의 트레이닝복은 몸매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지만 요즘 우리가 입는 캐포츠룩은 날렵하면서도 단단한 몸매가 아니면 소화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아름다움과 삶에 대한 기준이 바뀐 것도 츄리닝의 부활에 일조했다. 이젠 성형수술과 무리한 다이어트로 꾸민 인위적인 미모보다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하고 탄력있는 몸매, 적당히 붙은 근육과 활기 넘치는 태도, 삶에 대한 당당함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것. 아름다운 여성 역시 두꺼운 화장발에 공주풍의 드레스로 가냘픈 몸매를 감추는 것보다 함께 열심히 운동을 한 다음 흘러내린 땀방울, 탱탱한 몸의 선이 은근히 드러나는 트레이닝룩이 더욱 섹시해 보인다고 한다. 가장 큰 변화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일중독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식하게 땀만 뻘뻘 흘리는 운동이 아니라 운동·요가·명상·아로마테라피 등으로 휴식을 중시하며,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재인식해 몸과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웰니스(wellness)·웰빙(wellbeing) 등으로 라이프 스타일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꾸준한 운동으로 다듬어진 몸매와 평화로운 표정은 그만큼 시간과 돈, 열정을 갖고 있다는 ‘부티’와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절제력을 보여줘 신뢰감을 준다는 것. 그 모든 것을 한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건강하고 섹시한 트레이닝 패션이다.

경향신문 기사·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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