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틀속 직장인보다 틈새 자유인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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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전국교차로협의회
  • 03.07.11 10:49:42
  • 조회: 443
정모씨(30)는 대학 졸업후 한번도 정식 취직을 해본 적이 없다. 3년전 졸업후 수십개 기업체에 입사원서를 내 보았지만 번번이 낙방. 그 뒤부터는 아예 취업을 포기한 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1주일에 두차례 중학생 과외, 틈틈이 생기는 통·번역 아르바이트로 버는 한달 수입이 1백20만원 정도.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갑자기 목돈이 필요할 때는 두서너달씩 학원에서 강사로, 음식점에서 접시닦이로 겹치기 아르바이트를 하면 됐다. 아르바이트 경력 2년만에 그는 “앞으로도 영원히 취직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평소 생계를 위해 하루에 쓰는 시간은 5시간 내외.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자신의 공부나 취미를 위해 사용한다. 일본어에 이어 최근 중국어 공부를 새로 시작했다. 취미는 대낮에 텅 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 친구가 필요하면 회원으로 가입한 네댓개 인터넷 동호회의 정기 모임에 나간다. 그는 “구속 없이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지금의 상태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말했다.

강민수씨(30)는 아예 회사원이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시에 출·퇴근하는 생활, 조직에 매몰되는 생활을 끔찍하게 여겼기 때문. 마라톤 취미를 살려 마라톤 대회 종합 솔루션을 기획하는 일을 했으며, 대학시절 배워둔 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업체 홈페이지 제작일을 맡아 하고 있다.

수입이라곤 “겨우 밥 먹고 살 만큼”. 그러나 후회는 없다. 강씨는 “내 시간을 다른 사람의 손에 저당잡히지 않고 미래를 스스로 설계해 나갈 수 있는 지금의 상태가 매우 만족스럽다”고 했다.

이처럼 국내에도 ‘프리터’가 자리잡고 있다. ‘자유롭다’는 영어 ‘프리’(free)와 ‘근로자’를 뜻하는 독일어 ‘아르바이터’(arbeiter)를 합쳐 만든 ‘프리터’(free-ter). 말 그대로 ‘자유롭게’ 일하고 생활하는 젊은이들을 지칭한다. 평생 정규직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파트타이머를 지칭하는 일본식 조어 ‘프리터’가 국내에 상륙하던 5~6년전만 해도 그들을 ‘별난 사람’ 쯤으로 취급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얼마전 국내 채용정보업체 ‘잡링크’가 구직자 3,1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정규직 취업 대신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31%에 이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심각한 취업난 때문”이라는 대답이 55%로 가장 많았지만 “자유로운 시간활용을 위해서” “획일적인 조직문화가 싫어서” “직장 스트레스가 싫어서”라는 대답도 41%에 달했다. 취직이 안돼 어쩔 수 없이 프리터가 된 경우가 많지만 본인이 원해서 정규직을 갖지 않는 사람들도 상당수란 얘기다.

명문대 졸업 후 헤드헌팅 업체에서 임시직 컨설턴트로 일하며 에콰도르에 문구류 납품을 하는 박정호씨(31)는 “샐러리맨이 되고싶지 않았다”며 “통근열차에 몸을 쑤셔넣고 원치 않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생활 속에서 어떻게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광고디자인·인테리어 컨설팅·상품 기획 등 여러가지 일을 하며 생활하고 있는 윤수진씨(32·여)도 “회사에 찌들려 사는 동료나 부모의 생활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며 “기회가 닿는 대로 삶을 즐기며 돈이 필요할 때 일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인간다운 생활”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디자인 회사에서 여러차례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지만 과감히 거절하고 현재의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프리터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입장은 대체로 곱지 않다. 서모씨(49)는 “자기 일에 책임을 지지 않고 부모의 곁에서 기생하는 문화가 보편화된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나 프리터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다. 정모씨는 “열심히 공부해도 보장되지 않는 직업, 평생 열심히 일해도 집 한채 장만할 수 없는 상황, 회사에서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위기감 등이 정해진 궤도대로 사는 삶 자체를 허무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경기불황 때문에 심한 박탈감을 느끼거나 주변에서 그런 선배·동료를 보아왔던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프리터의 대열에 끼게 된다는 얘기다.

기성세대의 우려처럼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강민수씨는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프리터들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고 있다”며 “정해진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며 사는 것을 당분간 거부할 뿐”이라고 못박아 말했다. 실제로 윤수진씨는 디자인 부문에서 매우 창의적인 능력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밖에 많은 프리터들도 예술부문 등에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기적인 경기불황으로 인해 생긴 고실업 사회의 새로운 단면. 이제 우리 사회도 본격적인 프리터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얼마 안가 열심히 노력한 후 미래에 땀의 대가를 얻는다는 식의 이야기가 통하지 않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퇴직 때까지 수십년간 엄격한 위계질서 아래에서 봉사하는 대신, 필요한 만큼 적게 일하고 가능한 한 즐겁게 사는 삶. 젊은이들 사이에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경향신문 기사·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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