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업정보] 불경기 언덕길 바퀴달고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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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전국교차로협의회
  • 03.06.14 10:22:28
  • 조회: 1375
#목 찾아 삼만리

점포가 달린다. 부자가 되고 싶은 서민들의 아픈 꿈을 안고.
불경기로 너나없이 가계부에 주름이 깊어진 요즘, 도심 곳곳에 생계형 트럭 행상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일명 ‘바퀴달린 점포’로 불리는 이 트럭들은 갖가지 물건을 싣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과거에는 야채나 과일 판매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호떡, 만두, 우동, 자장 등 즉석 먹거리에서 공산품, 토산품, 명품 짝퉁에 건강용품, 문화상품까지 종류가 다양하고 갈수록 세분화되는 추세다.

다양해진 품목만큼이나 ‘바퀴달린 점포’의 주인 역시 다양하다.
이것저것 해보다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트럭 행상에 나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녀의 사교육비를 벌어볼 요량으로 합류한 주부도 있다. 지난해 ‘월드컵용품’ 좌판으로 재미를 본 대학생도 있고, 자기 가게를 두고 있으면서 오지 않는 손님을 찾아나선 ‘부지런한 주인’도 있다.

제아무리 바퀴를 단 ‘가게’라 하더라도 장사의 제1 덕목은 뭐니뭐니 해도 자리, ‘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철역 주변이나 대단지 아파트 진입로는 ‘바퀴달린 점포’가 눈독을 들이는 최대 상권이다. 목이 좋은 만큼 위험부담도 크다. 단속에 걸리면 그날 장사는 물거품이 되고 말지만 그래도 남는 게 더 많은 장사다.
전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서울 신도림역 주변은 오가는 사람 못지않게 하루종일 손님을 찾아 들락거리는 ‘바퀴달린 점포’들로 1차선 도로변이 닳아빠질 지경이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최소한 하루 4명의 ‘사업자’가 고정적으로 출연한다.

하루중 가장 먼저 이곳을 차지하는 점주는 토스트점. 첫 전철이 출발할 즈음이면 토스트와 음료수를 실은 점포가 등장한다. 1t 트럭을 개조해 조리대를 앉히고, 여름 햇빛을 가리기 위해 ‘발’까지 드리운 이 트럭은 아침시간 잠깐 장사를 하고 부리나케 짐을 싸 사라진다. 길어야 2시간 장사지만 하루종일 식당 구정물에 손을 담그는 수입보다 낫다는 게 상인의 말이다.

‘토스트 차’가 빠지고 나면 이번에는 형형색색의 양말을 가득 실은 차가 자리를 잡는다. 출근길에 누가 양말을 살까 싶은데 혼자서는 손발이 바쁠 정도도 찾는 사람이 많다. ‘양말 차’도 한 무리 출근길 손님을 맞고 나면 곧장 자리를 옮긴다. 양말차가 떠난 자리에는 일용품상이 들어서고 밤 10시쯤엔 즉석 우동가게가 입점,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한다.

# ‘바퀴 5일장’도 성업

중학교 교사였던 임경수씨(35)는 퇴직 후 패스트푸드점을 시작했으나 재미를 못보고 문을 닫았다. 새 사업을 구상하던 그는 어린이 전용 ‘이동식 입체영화관’을 착안했다. 대형 트럭에 탑차를 올리고 50명이 함께 관람할 수 있는 좌석을 배치했다. 스크린을 붙이고 노래방에 냉방시설까지 갖췄다. 1명당 입장료 3,000원. 15~20분 남짓한 영화 상영과 노래방 뒤풀이까지. 청주 시내 명물이 된 이 영화관은 방학 전까지 예약이 꽉 차 있을 정도로 바퀴에 불이 붙었다.

강원도 산골. 흙먼지를 풀풀 날리며 트럭 한대가 달려간다. 노란색 외장 때문에 ‘황금마차’로 불리는 이 트럭은 산간오지 군부대를 돌아다니는 ‘이동식 PX’. 육군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이 차는 산간오지 군인들에게 간식과 생필품를 팔러 다닌다. ‘황금마차’를 잡기 위해 보초를 설 정도로 벽지의 군인들에겐 애인의 편지만큼이나 반갑다.

인천의 한 공동묘지 중턱에는 형형색색의 외장에 ‘천당가는 길’이라는 간판이 눈길을 끄는 스낵카가 있다. 공동묘지 손님들이 주고객인 이 스낵카는 독특한 이름과 이색적인 장소 선택으로 눈길을 끈다.

이밖에 자신의 가게를 두고 있지만 요즘같은 불황에 가만히 앉아서 찾아오는 손님만을 기다릴 수 없어 뛰쳐나온 점포도 눈에 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점포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만물상’이나 ‘가죽 및 구두 수선집’은 아파트 단지를 끼고 이동하는 점포가 성업중이다. 1주일에 5~6개 아파트 단지를 고정적으로 돈다. 그러다 보니 단골도 생겨 하루에 많게는 20만~30만원의 매상을 올린다.

‘바퀴달린 점포’는 또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 일명 ‘바퀴 5일장’. 도심의 재래시장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틈새를 이용한 이들 ‘바퀴 5일장’은 인근에 대형 마트나 재래시장이 없는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이동식 장터’를 연다. 야채·과일·생선 등이 주가 되는 가운데 잡화·부식·서적·장남감·화초·인테리어 소품 등 인기품목을 포진시킨다.

요즘은 시골 5일장에서도 보기 힘든 ‘튀밥집’이나 ‘뽑기’ 등도 합류해 품목은 더욱 풍성해진다. 일주일에 한번 ‘바퀴장’이 서는 날이면 아파트 단지 안은 장터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자주 못만나는 이웃과도 자연스런 눈인사를 나눈다. 이들 이동식 바퀴 5일장은 옛날 보부상 조직만큼이나 위계와 관리가 철저하다. 적게는 6~7개, 많게는 50개까지 ‘이동식 바퀴달린 점포’들이 한 팀장 아래 집결해 있다.

경향신문 기사·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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