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업뉴스] '돈벼락’에 불안한 나날… 인생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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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전국교차로협의회
  • 03.05.03 10:28:24
  • 조회: 1423
‘인생 역전’의 꿈. 로또복권이 시행 5개월째를 넘기고 있다. 22회차를 넘긴 로또복권이 현재까지 낸 1등 당첨자는 모두 70명. 로또를 샀던 수백만명 중 70명만이 ‘인생 역전’에 성공한 셈이다. 당첨금은 7억9천여만원부터 4백7억2천여만원까지. 물론 이 ‘억세게 운좋은 사람’에 들지 못한 나머지 수백만명은 거듭되는 허탈감과 씁쓸함 속에서 또다시 로또에 매달리고 있다.

#1등 당첨자들

국민은행 복권사업팀이 전하는 1등 당첨자 70명의 사연은 가지각색이다. 2회차와 3회차의 1등 당첨자는 모두 샘에서 물이 솟구치는 꿈을 꾼 뒤 당첨됐다. 이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한때 ‘로또에 당첨되려면 물꿈을 꿔야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14회차 1등 당첨자는 아예 꿈에서 당첨번호 6개를 봤다. 숫자 하나가 기억나지 않았던 그는 5개 숫자를 쓴 뒤 마지막 여섯번째 숫자를 골라 썼다가 1등뿐 아니라 3등도 4개나 나오는 행운을 잡았다. 1백70여억원에 당첨된 청주의 20대 주부는 종이에 쓰여진 45개의 숫자에서 7살된 딸아이가 제비뽑기한 숫자를 써내 ‘대박’을 잡았다. 4백7억여원에 당첨된 박모씨는 로또를 사기 전날 아버지 산소를 찾아가 벌초를 해 “아버지의 혼이 도와준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권사업팀에 따르면 20회까지의 1등 당첨자 47명 중 서울이 13명으로 가장 많고, 경기(10명), 대구·인천(각 4명)이 뒤를 이었다. 직업별로는 자영업(13명), 회사원(10명), 전업주부(9명) 순이었고, 40대(17명)와 30대(16명)가 많았다. 예전에 주택복권 당첨자들이 40·50대 서민층이었다면 로또 당첨자들은 20·30대가 늘어난 것도 특이한 현상. 젊은층이 ‘OMR 카드’에 익숙한 데다 직접 번호를 선택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희승 복권사업팀 과장(38)은 “복권 당첨자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에서도 부지런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며 “하늘이 복을 내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프닝들

로또를 둘러싸고 갖가지 해프닝도 끊이지 않았다. 1등 당첨 로또복권이 분실됐다며 누군지 모를 복권 습득자를 고소한 김모씨(34)의 경우가 대표적. 하지만 조사 결과 김씨 주장처럼 뒷면에 이름과 출생연도가 적힌 1등 복권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당첨번호를 맞혔지만 시간이나 돈이 없어서 복권을 구입하지 못해 땅을 치는 사람들도 나왔다. 서울 종로구의 한 중국집 배달원은 1등 당첨번호를 복권용지에 기입까지 해놓고 3회차(20여억원) 때는 돈이 없어서, 10회차(64억여원) 때는 마감시간이 넘어 대박을 날렸다고 한다. 당첨번호가 아닌데도 당첨된 걸로 착각해 국민은행을 찾아오는 ‘김칫국 마시기’형도 있다. 1등 당첨자가 나온 로또 판매소에는 다른 지방에서까지 찾아와 ‘명당의 기’를 얻기 바라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판매소 업주에게 번호를 직접 찍어달라는 사람도 있다. 4백7억여원의 ‘대박 주인공’이 자동선택 번호로 당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전까지 14%밖에 안되던 자동선택 번호 비율이 30%를 웃돌기도 했다.

#당첨 그후

로또복권 1등 당첨자들은 과연 ‘인생 역전’에 성공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당첨과 동시에 ‘인생 역정’이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신분이 노출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그 출발점이다. 신분이 알려지는 순간 닥쳐올 신변에 대한 불안감과 주위의 시선들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다. 인터넷에는 ‘요일별 행동요령’ 등을 담은 ‘당첨자 행동수칙’이 나돌 정도다.

6회차 1등 당첨자인 조모씨는 신원이 알려지면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다. 기부금을 요구하는 각종 단체들의 전화와 “돈 갖더니 변했다”는 이웃의 쑥덕거림은 고통 그 자체였다. 조씨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잦아졌다. 단란했던 가정이 ‘인생 역전’해준다는 로또로 인해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19회차 로또 1등으로 당첨돼 4백7억여원을 거머쥔 박모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의 신원이 강원 모 경찰서의 경찰관으로 알려지자 그가 근무한 경찰서엔 신원을 밝히지 않는 사람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언론사들이 그의 집앞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박씨는 당첨금을 수령한 뒤 하루만에 사표를 내고 가족과 함께 잠적했고, 지난 26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외국의 사례를 봐도 수백억원짜리 복권 당첨자들의 삶이 행복했던 경우는 드물다. 2백50억원의 복권 당첨자가 11년만에 당첨금을 모두 잃고 파산하는 등 당첨 후 인생이 이혼, 재산분쟁, 마약 및 알코올 중독 등 불행으로 치달은 경우가 더 많았다.

#로또는 계속된다

1등에 당첨될 확률 8백14만5천60분의 1. ‘마른 하늘에 날벼락 연속으로 맞기’보다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0.00001%만이 인생 역전에 성공한다는 엄연한 사실은 무시하고 많은 사람들이 수십억, 수백억원의 당첨금액만을 생각해 로또에 매달린다.

로또 옹호자들은 “2,000원으로 1주일이 즐거워진다”고 말한다. 사행심 조장과 중독성을 우려하는 데 대해 갈수록 ‘빈익빈 부익부’를 절감하는 서민들에겐 복권이 그나마 유일한 희망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사실 서민들에게는 복권 당첨이 거의 유일한 계층 상승의 기회일지 모른다. 로또는 ‘인생 역전’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회에서 팍팍한 삶에 잠시나마 생기를 불어넣는 일종의 진통제인 셈이다.

손바닥 크기만한 로또용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부질없는 꿈과 희망과 좌절의 에피소드가 얽혀 있다. 1등 총당첨금이 8백35억여원에 달해 전국이 들끓었던 10회차 때의 ‘광풍’은 더 이상 불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로또열기가 아예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주춤하는 듯했던 로또열풍이 1백57억여원의 1등 당첨금이 이월되면서 4백7억여원의 당첨자가 나온 19회차를 전후로 다시 과열된 예를 봐도 알 수 있다.

‘인생 역전’에 대한 꿈이 존재하는 한 로또는 계속된다. 적어도 거기에는 로또가 레저냐 도박이냐라는 논란이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경향신문 기사·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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