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재미있는 노인이야기 - 김 선생의 외롭고 어지러운 봄날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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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전교협
  • 00.12.30 13:01:03
  • 조회: 737
남편의 태도에 뭔가 변화가 느껴진건 약 1~2년 사이였다.
평소엔 없던 행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무뚝뚝한 남자가 갑자기 자상해 진데다 헤헤거리는 품이 뭔가 수상쩍었다.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러지?” 이들 부부는 소위 뼈대있는 양반집안간에 맺어진 혼사답게 서로에 대한 예의가 평생 깍듯했다.
부부간에 별다른 대화없이도 수십년을 조용히 살아왔다.
그녀는 아주 정숙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왜 갑자기 이러는걸까. 알고보니 회사의 경리 아가씨와 바람이 난 것이었다.
그때도 그녀는 흥분하지 않으려 애썼다. 정중히 항의하며 말을 꺼낸 그녀에게 그러나 남편은 오히려 적반하장이 었다.
“사장이 직원들 접대도 못하나? 여자가 남자하는 일에 왜 그렇게 말이 많아!”라며 김씨에게 언성을 높이고 나왔다. 차라리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그렇게 바랬건만. 남편은 더 큰 충격을 그녀에게 던져주었다.
“솔직히 당신하고 사는게 하나도 재미없어. 조금의 빈틈도 없는, 피곤한 여자야, 당신은!” 김씨는 울컥 분노가 치민다. “대체 나는 뭐란 말인가? 자기는 뭐 잘 한게 있다구…”
이즈음 그녀도 다른 남자를 알게 되었다.
고위 행정직에 있는 박씨였다. 그는 김씨에게 말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있지 않아. 단지 의무감에서 사는 것 뿐이야! 당신을 사랑하고 싶다.” 매너도 좋고 정감 있는 그의 행동에 김씨는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나도 내 인생을 찾아야겠어.”
박씨와 김 선생은 각자 이혼함으로써 두사람이 함께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기로 하였다.
어차피 한번뿐인 인생, 이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생각에 김씨는 용기가 생겼다. 남편은 의외로 쉽게 이혼에 응해주었다.
자신의 배신 때문에 시작된 일이니 당연히 그럴법했다.
두 사람은 곧 90평 빌라를 얻어 둘만의 새 보금자리를 꾸미는 것으로 새 생활을 시작했다. 김씨에겐 처음을 맛보는 달콤한 날들이었다. 박씨가 좋아하는 맥주의 온도를 맞추어놓았다가 퇴근하면 차려주고, 출근할 때도 잘 손질된 양복에 멋쟁이로 꾸며 주었다.
지갑도 두둑하게 채워주었음은 물론이다.
5년이 꿈같이 흘렀다. 그러나 이때 일이 터진 것이다. 곧 이혼을 하겠다던 박씨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박씨의 말은 그랬다. 자식들 결혼은 보내야 될 것 같다. 책임감 때문에 안된다고…. 하도 답답한 마음에 그녀는 박씨의 아내도 만났다.
“집안의 가장이 벌써 몇 년째나 집에 안들어가고 있는데도 어떻게 가족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어요?” 오히려 박씨의 아내는 담담했다. “우리는 원래 그랬어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럼 나는요?’” “편한데로 사시구랴. 그래도 이혼은 못해요. 누구 좋으라고….”
김선생은 고양이 미미를 생각하고 있다. 커다란 눈에 처진 눈매, 이젠 수명이 다해서 하늘나라에 가 있는 미미. 아무도 없는 빌라의 따스한 테라스에 흔들이 의자에 앉아 김씨는 졸고 있다.
“내일 모레면 나도 60줄에 드는구나. 삶이란 무얼까? 돈, 명예, 자식, 어느 것 하나도 실패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내 마음속의 이 스산함은 대체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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