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현미 작가] 행복한 삶
  • 04.02.28 09: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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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참 ‘한가한’ 작가였다. 아니 한가하다 못해 세 통씩이나 만들어 놓은 명함에 먼지가 뽀얗게 앉을 만큼 ‘노는’ 작가였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작품을 홀로 써대며 당시 나는 몹시도 절망했었다. 더욱이 작가라는 직업이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해서 앞날이 보장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맨 땅이나 파고 있는 두더지가 된 기분이었다.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먹고사는 일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현실에 감사는커녕 매사 짜증이고 불만이었다. 암만 따져봐도 잘 쓴 대본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 감독들의 자질을 운위하며 자다가 벌떡 일어나길 수십 차례...
그때마다 ‘바빠지기만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정말 그렇게 믿었었다. 그렇게 혼자 주인공을 살렸다 죽였다, 스스로의 대사에 빠져 울었다 웃었다, 휴지와 파지가 널린 방안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 난 지금에서야 나는 바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전보다 한숨이 더 많아졌다.
방구석을 뱅뱅 돌며 작품 구상에 들이쉬고 내쉬던 그 옛날의 거친 숨은 비록 외롭고 쓰디썼을 망정 뽀빠이의 시금치처럼 에너지가 돼 주었었다. 그러나 요즘 내가 내쉬는 한숨은 가족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망치고, 내 삶의 활기마저 부식시키는 곰팡이가 되어버렸다.
“엄마는 왜 작가가 됐어요?” 30분 후에 깨우라고 했는데 내처 두어 시간을 자게 내버려둔 아들녀석한테 빽 소리를 지르자 터져 나온 질문이었다. “좋아서!” 묻자마자 나온 내 답변에 아들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맨 날 잠도 못 자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양푼에 반찬 몽땅 집어넣어 컴퓨터 앞에 앉기 일쑤고, 놀러도 못 다니고, 그렇다고 TV에 얼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좋으냐는 아들의 질문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정말 할 말을 잃었다. 그토록 바라던 일을 숨가쁘게 하고 있음에도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가했던 그 옛날을 떠올리며, ‘오만하지 말자’고 암만 다짐해도 역시 행복해지지 않았다. 순간, 가슴 저 밑바닥에서 또아리 틀고 있던 질문 하나가 불쑥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왜 사니? 왜??”
그 날 나는 컴퓨터 전원을 끄고 장바구니 들고 시장으로 달려갔다. 남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내가 좋아하는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봄 향내가 물씬한 야채와 과일을 사면서 나는 행복해졌다. 컴퓨터 앞이 아닌 식탁에 가족들과 둘러앉아 맛나게 샐러드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나니 더 많이 행복해졌다. 이렇게 쉬운 것을...
하필 나를 꼭 찍어 일을 맡기는 분들이 고맙고 미뻐서, 솔직히는 현명(顯名) 하겠다는 욕심이 앞서서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많은 양의 일을 짊어지고 지쳐갔던 형국이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법정스님의 말에 무릎을 치며 오늘은 아들녀석과 배드민턴이라도 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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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섭(당시 8 세)
김유섭(당시 8 세)
*성 별: 남
*신 장: 120cm
*두 발: 스포츠형
*상 의: 검정 점퍼
*하 의: 회색 바지
*신 발: 검정 운동화
*신체특징: 눈썹이 진하고 검은 편임
*발생일자: 2003년 2월 6일
*발생장소: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