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현미 작가] 느리게 사는 게 지름길이다.
  • 04.01.29 08: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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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가족들과 집 근처의 야산에 올랐다. 당장 써보내야 할 원고가 산적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올해는 꼭 해돋이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짬을 냈던 것이다. 기실 가족들과 함께 해돋이를 하는 건 결혼이후 처음이었다. 몇 번 벼르긴 했지만 워낙 아침잠도 많은데다, 막상 일어나려고 마음 먹었다가도 매일 뜨는 해, 새해라고 뭐 다를쏘냐 싶은 생각에 주저앉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꼭 일출을 바라보며 새해 소망을 빌고 싶었다. 그 욕심에 꼬박 밤을 새운 몸을 이끌고 해돋이를 함께 하기로 한 이들과 만나기로 약속된 장소로 나갔다. 그런데 웬걸, 약속시간 6시 반이 넘도록 사람들이 나타나지를 않았다.

함께 산을 오르기로 한 사람들이 남편의 친구들과 그의 가족들이었던지라 나는 남편에게 짜증을 부렸다. 조금만 기다리면 올 거라는 남편의 말에 길바닥에서 사람을 기다리며 흘려보내는 시간은 누가 보상해 줄 거냐고 화를 내고 말았다. 사람들이 오면 깨울 테니 차 속에서 눈 좀 붙이라는 남편의 말에도 나는 목을 길게 빼고 지나가는 헤드라이트가 우리 쪽을 향해 커브를 트는지 지켜보았다. 그런데도 남편은 어디까지 왔나 전화 좀 해보라는 내 말에 끝내 묵묵부답이었다.
새해 첫날부터 부부싸움 하기 딱 좋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포화상태에 이를 즈음, 하나 둘 남편의 친구들과 그 가족들이 도착했다. 그러나 어떤 모임이든 항상 늦는 가족이 이번에도 마지막까지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누구하나 화를 내는 법 없이 느긋했다. 심지어는 자기 때문에 모두가 산행을 못하고 기다리고 있을 게 미안해서 전화한 사람에게 남편의 친구 중에 한 사람은 아예 천천히 오라고 대답해 내 속을 긁어놓았다.
나는 그들의 느긋함에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저렇게 대처하니까 늦는 사람이 항상 늦는 법이라고 속으로 궁시렁 거렸다. 마침내 그 가족이 도착하고 시작한 산행은 자칫 해돋이를 놓칠까봐 무척 빠른 걸음으로 진행되었다. 몇 년만에 처음 하는 산행인데다, 밤새 꼬박 잠을 못 잔 터라 당연히 나는 뒤쳐졌다. 몹시도 미안했지만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 걸음과 보조를 맞추느라 쉬고 또 쉬는 그들보다 내가 더 조급했다. 이러다 해돋이를 못 보면 어떡하느냐는 내 질문에 함께 간 사람들은 어디서고 해는 보인다며 넉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남들 보다 정상에 이 십 여분 늦게 도착한 우리 일행은 이미 해돋이를 기다리다 지쳐 내려간 사람들 대신에 뒤늦게 안개 속에서 떠오르는 해를 감상할 수 있었다.

아름답게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나는 그날 커다란 교훈을 얻었다. 조급해하지 말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게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우리의 삶과 인생의 목표에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임을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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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시리 04.01.29 12:47:47
    느긋하게 살아가는 게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우리의 삶과 인생의 목표에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임은 아니고 그럴 수도 있다가 맞지 않을까요? 산업전선에서도 자기발전을 위한 시간 관리에도 느긋함은 득보다 실이 많은 것 같아요. 오늘 이 사회가 요정도로 사는 것도 작가님의 당초 성격처럼 시를 다투는 선배들이 많아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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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빈 (당시 2 세)
유채빈 (당시 2 세)
* 성 별: 여
* 신 장: 90cm
* 두 발: 단발형
* 상 의: 분홍색 스웨터
* 하 의: 흰색 바지
* 신 발: 밤색 구두
* 신체특징: 왼쪽 손등에 화상자국, 보조개 있음
* 발생일자: 2003년 11월 22일
* 발생장소: 충남 공주시 신관동 시외버스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