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현미 작가] 수녀님의 게임
  • 02.07.05 09: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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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기차를 탔을 때의 일이다. 차만 타면 잠이 드는 습관 때문인지 타자마자 골아 떨어졌는데, 어디선가 뿅뿅뿅 전자 게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짜증스런 얼굴로 잠에서 깬 나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게임이나 하고 있을 만큼 한가해 뵈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다들 쪽잠에 취해있거나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그러다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의 진원지가 바로 내 옆자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비어있던 자리에 어느새 수녀님이 앉으셨는지 밝은 회색빛 원피스 차림의 수녀님께서는 몸을 45도 각도로 틀어 차창 쪽을 향한 채 연신 휴대폰으로 게임을 즐기고 계셨다. 그래도 옆자리를 의식해서 조심조심 게임을 즐기시는데, 그만 두시라 할 수도 없고 작은 소리지만 신경은 쓰이고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때마침 홍익회 아저씨가 지나갔다. 나는 수녀님께 커피를 드시겠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수녀님은 뜻밖에도 나이가 지긋한 분이셨다. 잔뜩 장난기 어린 웃음을 입에 물고, 게임이 중단된 게 못내 아쉽다는 듯 괜찮다며 서둘러 액정 화면에 고개를 박는 분께 나는 커피 한 잔을 건네 드렸다. 그렇게 수녀님과 말문이 트였다. 수녀님께서도 게임을 하시나봐요? 성경책 대신에 웬 게임이냐는 은근한 속마음을 담아 여쭙자 돌아오는 대답은 뜻밖에도 자기는 원장 수녀님에 비하면 새 발에 피란다.

평소 휴대폰은 유치원의 대표이신 원장 수녀님이 사용하시는지라 자기는 한 달에 한번 공적인 세미나에 참석할 때만 겨우 휴대폰을 천신할 수 있노라는 말씀이셨다. 기차에서 내리면 곧바로 세미나 장으로 달려가야 하니 게임 실력을 늘릴 시간이 없어 비난을 무릅쓰셨다며 미안해 하셨다.

짜증이 묻어있던 마음에 대번 웃음이 번졌다. 평소 생각했던 수녀님과 너무도 다른 모습 때문이었다. 내 반응에 놀라웠는지 수녀님은 자기들도 일반인과 똑같다고 말씀하셨다. 예전에 절친한 수녀님 한 분이 직장암으로 수술을 받으셨는데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제일 먼저 한 말이 욕이었단다.

쾌유를 빌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병상에 빙 둘러서서 기도를 드리고 있던 다른 수녀님들이 덕분에 폭소를 터뜨렸단다. 워낙 신심이 두텁고 영혼이 이쁜 수녀님의 입에서 난데없는 욕설이 튀어나오니 그 역설이 주는 느낌이 너무도 짜릿하고 시원하더란다. 그래서 자기도 죽어라고 말 안 듣는 원생들이 있으면 남몰래 욕을 한 댄다.

녀석이야 알리 없지만, 하나님이 들으실 테니 염려스럽긴 해도 아마 하나님도 가끔은 속 썩이는 인간들 때문에 등 돌리고 앉아 욕을 하실 때가 있을 거라며 웃으셨다. 차창 넘어 아름다운 햇살에 편견이 여지없이 부서진 인상적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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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9.11.30 00:00:00
    편견속에 갇혀있는 사고가 터이는 느낌임니다..
  • 송정석 02.07.13 08:29:52
    참 재미 있었던 예기군요. 읽으면서 참 당연한 일인데도 어렵게들 생각하는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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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호 (당시 4 세)
최진호 (당시 4 세)
*성 별: 남
*신 장: 101cm
*두 발: 짧은머리
*상 의: -
*하 의: 청바지
*신 발: 검정색구두
*신체특징: 귀가 당나귀귀처럼 크고, 쌍거풀 있으며, 왼쪽볼에 손톱자국 있음
*발생일자: 2000년 5월 7일
*발생장소: 경기도 안산시 안산4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