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현미 작가] 원추리 나물
  • 02.03.15 09: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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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만 되면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할까 고민하는 게 일인데 요즘같은 봄철이면 일단 반찬 걱정 안해서 좋다. 남편이 유난히 나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제철에 나는 봄나물 한 두어 가지만 식탁에 올려놓고 들기름에 살짝 구운 김 얹어 한 그릇, 고추장 넣고 썩썩 비벼서 또 한 그릇, 그렇게 기본이 두 그릇이다. 제 아빠가 맛나게 먹는 걸 보면 고기 좋아하는 아들녀석까지 덩달아 한 그릇 어렵지 않게 비워내니 이래서 나는 봄이 고맙고 반갑다.

며칠 전에는 원추리 나물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무치다가 문득 혼자서 웃고 말았다. 옛날 생각이 나서 말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시집오기 전에는 나물 이름 몇 가지만 안다 뿐이지 어떻게 조리하는 지도 잘 몰랐다. 그런 내가 하필 나물을 좋아하는 시댁에 시집을 온 것이다.

내 딴에는 요리책에 쓰여 있는 대로 한다고 하는데도 식탁에 올라온 나물 반찬을 맛보신 어머니의 훈시는 끊이질 않았다. 물기를 꼭 짜야 나물에 간이 배지 이렇게 물기가 흥건해서야 어디 먹겠니? 그런 말씀을 들은 다음에는 물기를 꼭 짜서 조리해 놓으면 세상에 원 퍽퍽해서 먹겠니? 이러시는 거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께서 꼭 난초 잎같이 생긴 나물을 사오셨다. 가만 있으면 중간이나 갈텐데 난초도 먹느냐고 어머니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쭤봤다. 질문을 드리자마자 어찌나 웃으시던지, 그 웃음 끝자락에 원추리 나물도 모르는 애한테 그간 나물만 사다 주고 해보라고 했으니 그 속이 오죽 탓겠느냐며 등을 토닥이셨다. 그날부터 어머니께서는 나와 함께 나물을 다듬으며 조리법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머니가 잘 안해 드시는 지칭개나물을 식탁에 올려놓고 드셔보시라고 권하기도 한다. 이제 누가 더 나물을 잘 무치나 서로 자랑하는 경지에 오고 보니 신혼 초 , 어머니께서 왜 그토록 나물거리만 던져주고 나 몰라라 하셨던가 짐작이 간다. 요리 책에 씌여 있는 조리법보다는 손맛을 전해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 매운 손맛이 원추리 덕분에 당신 손끝에서 내 손으로 쉽사리 전해진 셈이다.

올 봄엔 어머니 모시고 칼이 아닌 손톱으로 뜯어야 제 맛이 난다는 봄나물을 한 바구니 가득 뜯어 쑥버무리도 해먹고, 무침도 해먹고, 큼지막하게 쌈도 싸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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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당시 2 세)
최재혁 (당시 2 세)
* 성 별: 남
* 신 장: 90cm
* 두 발: 검정 스포츠형
* 상 의: 흰색 남방
* 하 의: 멜빵 청바지
* 신 발: 곤색 운동화
* 신체특징: 곤색 모자 착용
* 발생일자: 2002년 10월 5일
* 발생장소: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