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덕신 스님] 걷는 행복
  • 03.09.25 08: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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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태풍 매미가 지나간 상처가 아직 그대로인데 가을볕은 보란 듯이 다사롭기만 하다. 이제는 대기오염으로 봄가을이 점점 줄어들고 여름과 겨울만 있을 거라고 하니, 짧기만 한 가을에 할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모처럼 시간을 내어 도반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도반은 워낙 깊은 산중에 토굴을 짓고 수행을 하고 있어서 차로는 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산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작은 바랑을 꾸려 꽤 오랜 시간동안 산길을 걸었다. 홀로 계곡에 앉아 땀을 식히니 작은 새 한 마리가 내 곁에 내려앉았다. 아마 저 새도 하늘을 날다가 지쳐서 목을 축이려 온 것이겠지. 새는 작은 몸뚱이를 이리 저리 움직이며 바쁘게 제 할 일을 하더니 다시 하늘로 날아 올랐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평화로움이었다.

그 옛날 수행자들은 모두가 이렇게 걸어 다녔건만 요즘은 세월이 변하여 스님들도 자동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스님이 운전하고 다니시는 모습이 어색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스님이라고 산중에 틀어박혀 염불만 외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나 같은 경우도 주기적으로 교도소에도 가야하고, 장애인 단체에 가서 봉사도 해야 하고, 방송국에 가서 방송도 해야 하니 차 없이는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평소 내가 아무리 차타는 것보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생활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차에 몸이 길들여져서, 이렇게 걷는 일은 낯설어지게 마련이다.

얼마나 쉬었을까. 계곡에 몸을 쉬고 다시 걸음을 옮길 때는 처음보다 더 천천히 걷기로 했다. 이왕 나선 길인데 천천히 걸어가며 모처럼 가을 산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천천히 걸으면 걸을수록 마음이 더 평화로워진다는 사실이다. 잡념도 사라지고 머리도 맑아 진다. 차를 타고 갈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도 있고, 가다가 멈출 수도 있고, 향기로운 숲의 기운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걷는 일은 오감을 자극해서 사소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게 하고, 아무리 작은 것도 놓치지 않게 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며,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 햇빛, 아무도 찾지 않는 모퉁이에 소리 없이 피어 있는 꽃들까지도 모두 내 눈 속에 들어왔다.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한 발 한 발 내 힘으로 땅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 느낌을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살았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기쁨이다. 특히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소망일까. 하지만 우리들은 자신이 가진 것은 보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만을 보는 존재이기에 걸을 수 있다는 평범한 기쁨에 만족하지 못한다. 게다가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남들보다 빨라야 하고 남들보다 뛰어나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경쟁의 시대가 아닌가.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속도에 집착하게 되어 느림보는 항상 대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란 말도 있지 않는가. 달리는 말을 타고 산을 보면 그 산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요즘 사람들은 빨리 달려서 한꺼번에 많은 산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산 하나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은 걷는 날이 필요할 것 같다. 걷는 행복을 잊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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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영광 (당시 2 세)
모영광 (당시 2 세)
*성 별: 남
*신 장: -
*두 발: 스포츠형
*상 의: 회색 츄리닝 상의(탑블레이드 그림)
*하 의: 회색 츄리닝 하의
*신 발: 청색 운동화
*신체특징: 눈썹이 짙고 일자형임. 피부가 검은 편, 머리숱이 많은 편이며 까치머리임, 말을 잘 못함, 뼈대가 굵은 편임, 생식기에 붉은 반점이 있음.
*발생일자: 2003년 10월 10일
*발생장소: 부산시 해운대구 우2동 성불사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