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섭 시인] 사라져 가는 가을 운동회
  • 06.10.13 09: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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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시절 잊혀지지 않는 추억은 가을 운동회다. 이른 아침부터 김밥을 말고 계란을 삶으며 부산하게 부엌을 드나드는 어머니의 옷섶에선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하얀 티셔츠에 검정 반바지, 청군, 아니면 백군 모자를 눌러 쓰고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신장로를 신바람 나게 달리면 마음은 풍선이 되어 둥둥 떠다녔다. 어른들도 바쁜 일손을 접고 운동장으로 몰려드는 마을의 축제였다.
푸른 창공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학교 본관 앞엔 귀빈석 천막이 잔칫집처럼 세워졌다. 스피커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불꽃놀이처럼 퍼진다. 운동장에서는 학년별로 준비한 메스게임이 이어졌다. 색종이를 붙여만든 족두리를 쓴 고학년들의 부채춤에 어른들은 어깨춤을 덩실거렸다. 손을 맞잡거나 어깨에 올라타 묘기를 부리는 텀블링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트랙에서는 달리기가 진행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화약 냄새 풍기는 딱총소리에 맞춰 이를 악물고 100m 달리기에서 1등을 하자 어머니는 눈가에 이슬이 맺히도록 좋아했다. 보라색 인주로 상(賞)자를 찍은 공책이 자랑스러웠다. 기다려지는 것은 콩이나 팥, 모래 등을 헝겊주머니에 넣은 오재미로 바구니를 터트리는 게임이다. 물론 먼저 터트리는 쪽이 이기지만, 승부보다는 바구니가 터질 때 오색 꽃가루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즐거운 점심시간’ 글자가 새겨진 현수막이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 높인 응원에 메스게임을 하고 달리느라 배가 출출해진 참에 김밥과 계란은 물론 아이스께끼와 솜사탕, ○○○사탕과 꽈베기 등 평소 먹고싶었던 주전부리를 할 수 있어 기다리고 기다린 시간이다.
어른들도 오랜만에 동창생이나 사돈을 만나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사과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그 시절엔 기마전, 2인 삼각 빨리 걷기 등 단결과 화합을 강조한 게임이 유난히 많았다.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바통을 이어받아 달리는 계주와 마을대항 줄다리기다. 부녀자들까지 합세하여 줄을 당기며 “영차! 영차!”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주민들은 어느새 혼연일체가 된다.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아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는 가을운동회가 없어지거나 반쪽이 되고 있다니 아쉽다. 대도시 학교는 운동장이 없거나 시골에는 취학아동 감소로 폐교가 늘어나는 실정이다. 요즘은 맞벌이 학부모들이 많아 가을운동회를 학예발표회로 대체하거나, 학사 일정 상 오전에 반짝 체육대회를 열고 오후에는 수업을 하는 ‘반쪽 운동회’로 축소되고 있다고 한다. 가뜩이나 정서가 메말라가고 허약해지는 아이들에게 신바람 나는 어울림 한마당이 사라지거나 반쪽으로 줄어든 것이다.
10월은 축제의 달이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벌이는 1000여개 넘는 지역축제 대부분이 가을에 몰려있다. 축제의 규모도 대형화되면서 세계적인 축제가 늘어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마을의 잔치이자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살가운 축제는 가을운동회 만한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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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민(당시 4세)
유채민(당시 4세)
*성 별: 남
*상 의: 청색 티셔츠
*하 의: 흰색 반바지
*신체특징: 아토피성 피부로 피부 건조함
*발생일자: 2003년 8월 1일
*발생경위: 해수욕장 갔다가 없어짐
*발생장소: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리 해수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