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유적지] 제 5편 중앙탑면,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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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박일호기자
  • 19.08.30 09: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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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떠나는 여행, 우리동네 문화재를 찾아서

 

제 5편 중앙탑면, 첫 번째 이야기

 

여행은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힐링의 수단이다. 단순하게 먹을거리부터, 체험, 즐길거리 까지 다양한 방식의 여행들은 우리 삶의 활력소가 된다. 멀리 떠나지 않고 우리 지역 가까운 곳이라도 잠시 일상을 내려놓는 여행을 떠나면 힐링의 의미는 두 배가 된다. 이렇게 즐거운 여행에 의미까지 더해지면 어떨까? 바로 문화재 여행이다. 수 많은 관광주제가 있지만 이 만큼 의미가 깊은 것도 없다. 단순하면서도 의미있는 우리지역 문화재 여행, 떠나보자.

 

◆ 중앙탑면

 

주소 :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일대

주요 문화재 :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상(충북 유형문화재 제76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6호)
                   선림보훈(보물 제700-2호)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충북 유형문화재 제8호)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충북 유형문화재 제271호)

 

우리동네 문화재 특집 제 5편은 문화재의 보고, 충주 중앙탑면을 소개하려한다. 충주시 대표적 관광지로서 다양한 문화와 유적을 담고 있는 중앙탑면. 그 첫 번째 이야기로 굵직한 문화재들을 담아보았다.

 

먼저 중앙탑공원은 남한강변에 조성된 충주시 대표적인 문화공원이다. 인근 다양한 즐길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충주시민들 및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다. 한적한 자연공원 한 가운데 국보 제 6호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6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만들어진 석탑이다. 국보 제6호. 화강암 석재의 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높다.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하여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불린다. 충주는 삼국시대부터 교통의 요지였던 곳으로 삼국은 모두 이 지역을 전진기지로 중시해왔다고 한다.

현재의 위치가 원위치로서 주변 경작지에서는 가끔 기왓장이 출토되고, 또한 석탑 앞에는 석등하대석(石燈下臺石)으로 보이는 8각 연화대석(蓮華臺石)이 남아 있어 이 일대가 신라시대의 절터임을 짐작할 수 있으나, 이곳 유적지에 대하여 아무런 기록이 없어 정확한 사찰명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 선림보훈(보물 제700-2호)

 

 

『선림보훈』은 총 상, 하권으로 그 중 한권이 충주 박물관 내 전시되어 있다. 고려 우왕 4년(1378)에 충주의 청룡선사(靑龍禪寺)에서 간행한 서책으로, 선사들의 도와 덕에 관한 교훈을 모은 선서(禪書)이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동일한 판본이 이미 보물 제700호로 지정되어 있듯이 고려 말기부터 조선으로 이어지는 시기의 우리 불교 사상이나 선종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또한 서책 간행과 관련된 거의 모든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어서 고려 말기 지방 사찰본의 간행 특징을 살필 수 있다.

 

발문 및 간행에 참여한 인물들에 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전말에 관한 자세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더욱이 현재 전래되고 있는 판본 가운데 판각과 인출이 가장 정교한 고려본으로 판단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여 연구하고 보존·관리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충북 유형문화재 제8호)

 

 

창동리 오층석탑은 현재 중원 청명주 입구에 위치해있다. 신라 말 고려 초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국보 제6호인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과의 거리가 남쪽으로 2㎞ 떨어진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기단부는 상하 2단의 이중기단으로 되어 있고 탑신부에는 각 면에 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옥개석 받침은 5단이며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다. 추녀 끝의 전각은 약간 반전되어 있다. 상륜부에는 현재 노반만이 남아 있다. 1977년에 원위치에서 정남방 60m 지점으로 옮겨 해체 복원하였다.

 

▶ 충주 창동리 석조약사여래입상(충북 유형문화재 제271호)

 

 

중원창동마애불에서 중앙탑부근으로 5분거리에는 창동리 약사여래 입상과 중원창동 5층석탑이 위치해 있다. 창동리 약사여래 입상은 충북 유형문화재 271호이다. 판석에 새겨진 불상의 모습이 앞서 소개한 창동마애불과 흡사하다. 판석 하나에 불상과 광배를 함께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과거 광산이었던 창동리 일대에서 광부들이 작업중 발견 한 것으로, 1977년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불상의 머리 부분은 몸체에 비해 큰 모습을 하고 있고, 얼굴은 온화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백호는 없으며 눈썹은 반원형으로 표현하였다. 양쪽 귀는 길게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전체적인 기법이 매우 단순화된 상이지만 상 속 불상의 미소는 왠지 모를 친근감을 갖게 한다.

 

▶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상(충북 유형문화재 제76호)

 

중원창동마애불은 높이 0.63m를 자랑하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6호인 고려시대 불상이다. 보통 바위에 새겨진 불상을 마애불이라고 하는데 중원창동마애불은 남한강가 자연 암반의 일부를 이용하여 평평하게 다듬고 바위에 꽉 차게 새긴 불상으로, 남한강변 동남쪽으로 향해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불상이지만 창동마애불은 크고 길게 새겨진 눈꼬리와 큼지막한 코와 귀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불상과는 거리가 있다. 세련되지 못한 세부표현, 하체가 생략된 부분, 여기저기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선에서 충주지역의 독특한 양식이 나타난다. 근엄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서민적인 친근감을 불러 일으키는 중원창동마애불은 충주지역의 옛정서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토속적인 불상이다. 강변 암벽에 조성되어있고 인근 목계나루터와 창고를 보아 나루터로 곡식을 옮겼던 조상들이 사고없이 무사히 운반할 수 있도록 마애불에 기원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취재:박일호기자/m1236@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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