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미리보기, 국가지정 ‘보물’되는 문화재 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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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자료제공 : 뉴시스 [http://www.newsis.com]
  • 17.02.28 15:48:38
  • 조회: 7032

 


국가지정문화재(보물) 6건이 예고됐다.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은 현 청주시 청원구 초정약수터에서 2㎞ 떨어진 곳에 있다. 석조여래삼존상은 하나의 돌에 광배와 삼존, 대좌를 모두 환조(丸彫)에 가깝게 표현한 일광삼존불(一光三尊佛), 즉 광배 하나에 삼존불이 표현된 형식이다. 왼쪽(向右) 협시 보살상은 찾을 수 없지만 여래와 협시보살이 하나의 광배를 배경으로 구성된 삼존 형식은 삼국 시대 6세기 중반 전후 크게 유행했다. 특히 대좌의 양 측면에서 사자 두 마리가 호위하고 있는 사자좌는 삼국 시대 이른 시기에 유행한 대좌 형식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6세기 중엽 삼국의 경계지역인 청주에서 전해오는 가장 귀중한 초기 삼국 시대 불상으로 역사, 미술사적 의의가 있다. 함께 전해오는 석조여래입상 역시 같은 시기에 제작된 삼국 시대 조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최석정 초상 및 함’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8차례나 영의정을 지낸 최석정(1646~1715)이 오사모(烏紗帽)에 녹색 관복단령을 입고 두 손을 소매 속에 모아 잡은 채 교의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이다. 의자에는 표범가죽을 걸쳤고 화문석이 깔린 족좌대 위에 흑피혜(黑皮鞋)를 신은 두 발을 올렸다. 쌍학흉배에 정1품 품계를 지닌 관료만이 맬 수 있는 서대(犀帶)를 착용했다. 얼굴 묘사는 선으로 이목구비의 윤곽을 그린 뒤 선묘에 붙여 미세한 색감을 가미하는 선염법으로 채색했다. 선묘는 얼굴 전체의 입체감을 고려, 최소화했다. 기본적으로 선염에는 서양 화법에서 유래된 음영법이 적용됐다. 전체적으로 17세기 공신도상에서 보이는 다소 경직된 신체표현에서 벗어나 더 자연스러워지는 경향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18세기 초엽 초상화의 드문 사례로 중요한 작품이다.


‘신여량 상가(賞加) 교서’는 1604년 조선시대 무신 신여량(1564~1605)이 세운 전공을 평가하고 포상으로 정삼품 당상관인 절충장군에서 종2품 가선대부로 자급, 즉 벼슬아치의 위계를 승진시키면서 내린 것이다. 이순신과 함께 전투에서 세운 공을 평가, 선조가 발급한 교서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신여량 밀부(密符) 유서’는 행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는 신여량에게 1605년 선조가 발급한 것이다. 군사 지휘권을 가진 지방관에게 밀부와 함께 내리는 명령서가 유서다. 국왕이 좌(左)부와 유서를 함께 발급하면 장수가 소지한 우(右)부와 맞춰 보고 일치되면 명령대로 군사를 움직이는 일종의 증빙이 밀부다. 임진왜란 이후 국왕의 군사명령 방식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중국 원나라 승려 유칙이 회해(會解)한 ‘능엄경’ 주석서다. 1455년(세조 1)에 주조한 을해자로 찍은 점과 ‘교정’인이 찍혀 있는 것으로 봐 간경도감(1461~1471) 간행본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간행한 ‘능엄경’ 주석본은 대개 송나라 계환의 주석본이다. 을해자로 찍은 ‘회해본’ 전본은 매우 희귀하다. 보존 상태까지 좋은 10권 3책의 완질본이다.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41’은 중국 당나라 승려 실차난타가 39품으로 신역한 80권본 중 권41이다. 각 장의 행자수가 23행 14자로 재조본(팔만대장경) 해당 경전의 24행 17자본과 다르다. 소실된 초조본의 저본계통과 재조본과의 차별성을 밝힐 수 있다. 유일하게 전하는 희귀 경전이다. 


문화재청은 예고기간 30일을 거쳐 이들 6건을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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